스승의 날과 스쿨미투
스승의 날과 스쿨미투
  • 등록일 2019.05.20 19:59
  • 게재일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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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육조(六朝) 이래의 산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으뜸인 당(唐)의 대문장가인 한유(768~824)는 스승을 따라 학문을 닦아야 할 당위성을 역설한 문장인 사설(師說)을 지었다. 먼저 스승의 정의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스승의 필요성과 스승 삼는 방법 등을 개진한 후에 당시에 남을 따라 배우기를 꺼렸던 잘못된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도 불구하고 육경의 경전을 모두 익힌 이반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을 기회로 이 글을 지어서 주게 됐다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

내용을 보면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중략),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도를 들은 것에 앞뒤가 있고 학술에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정리했다.

선생과 스승이란 단어를 새겨보면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으로 배울만한 것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은 배울만한 것이 있어야 비로소 스승이 된다. 이에 근거하면 학교의 교사만을 스승으로 삼을 근거는 사라진다고 보겠다. 또한 지식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게 했다면 그것 또한 스승이다.

우리사회는 스승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스승의 날’을 정해놓고 그 의미를 새긴다. 하지만 인성이 실종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교권침해는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에 의하면 지난 15일 최근 3년간에 접수된 교원의 교권침해 현황을 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가 2016년 442건(95%), 2017년 467건(94%), 2018년 478건(92%)이다. 10건 중 9건 꼴로 학생들이 교권침해 가해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 유형으로는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이 가장 많았으며 수업진행 방해, 교사성희롱, 폭행 등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에게 폭언이나 멱살을 잡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이런 실태가 아마도 경기도뿐만이 아닐 것이다.

교권침해의 반면에는‘스쿨미투(학교 성폭력 등 학교미투)’가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교육당국의 방치 하에 학교 성폭력을 고발한 학생들은 2차 가해까지 시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스쿨미투 전국지도를 공개하고 ‘가해교사는 스승의 탈을 쓰고 교권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성폭력 공론화를 이끌어낸 재학생이나 졸업생 고발이야말로 시대의 참스승이라고 말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교사의 교육활동이 안전하면 학생들의 학습권도 보장받을 수 있게 서로 연계되어 있다. 교사는 다른 직업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나아가 전 국민이 함께 학교 내 성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폭력 그리고 교권침해는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교사와 학생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유의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전달이 아니라 인성과 지성을 함께 가르치는 참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 스승의 날 폐지까지 언급되는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 황폐해진 교단(敎壇)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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