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과 ‘우상’이 민주주의 망친다
‘성역’과 ‘우상’이 민주주의 망친다
  • 등록일 2019.05.19 19:49
  • 게재일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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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어느새 39년 세월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하는 동안 24차례나 박수를 받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황교안 제1야당 대표는 우산대로 찌르려는 사람까지 나오는 살벌한 분위기에 퇴로를 열지 못해 묘지 후문 펜스를 뜯고 피신할 정도로 위협과 박대를 받았단다. 5·18 광주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강산이 4차례나 바뀐 긴 세월이 흐르고도 아직도 진상규명이 덜 됐다고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광주 시민과 1980년 당시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온갖 협박에도 ‘안 가면 더 욕먹을 것’이라는 강박관념 속에 광주행을 결행했다가 갖은 수모를 겪었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광주의 상처가 치유되고 시민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진정성을 갖고 광주를 찾고, 광주 시민들을 만날 것”이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그동안 ‘5·18 망언’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설 사태들이 있었으니,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억하심정을 헤아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분노의 수위를 함부로 시비할 계제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도 금기는 있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인 재단일 경우에는 충분히 냉정하고 엄격한 게 맞다.

극우성향의 인사들의 단언적 주장에서 비롯된 시빗거리 중 가장 첨예한 문제는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설과 5·18 유공자 중 상당수가 가짜여서 명단 공개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일 것이다. 두 주장은 쌍방의 논리가 워낙 첨예하고,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의 침소봉대와 확대재생산으로 인해 진실 판별이 더 어렵게 돼 버린 형국이다.

생각 같아서는 똑 떨어진 증거들을 펼쳐놓고 불순하거나 어리석은 억지를 펴온 인사들을 단박에 개망신 주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우리는 역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의혹이 수백 년을 흘러도 여전히 논쟁 중인 경우들을 무수히 본다. 권력에 의해 논쟁 자체가 봉쇄돼 꽁꽁 묻히고 세월에 씻겨 억울하게 사라진 진실은 또 얼마이던가.

진보진영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소위 ‘5·18 망언 처벌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민주당이 민주평화당·정의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의 법안을 종합할 예정이란다. 개정안은 5·18민주화운동 또는 5·18단체를 비판하는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처하도록 하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5·18을 ‘성역’으로 떠받들어 어떤 비판적인 견해도 내놓지 못하게 막는 금법(禁法)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위헌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필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악법이 될 여지가 있다.

그동안 1987년 KAL기 폭파나 2010년 천안함 폭침, 더 올라가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나 6·25에 대해 진보진영에서 어떤 가당찮은 담론들을 퍼트려왔는지를 반면 교사할 필요가 있다. 이슈마다 특별법 자물쇠를 채워놓고 입만 뻥긋해도 잡아넣는다면, 그게 바로 ‘독재’ 아니고 무엇이랴.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기적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북한의 악랄한 독재가 어떻게 기형적으로 심화돼 왔는지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는 패착이다. 누가 뭐래도 이건 아니다.

참된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쌓아가려면,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정치적 동기를 부여해서 처벌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 바쳐 투쟁해왔다고 우쭐대는 진보정치인들이 요즘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들 스스로 ‘좌파독재’의 업보를 쌓아간다는 힐난을 거듭거듭 자초하는 속내란 참으로 난해하다. ‘성역’과 ‘우상’은 어김없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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