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전략가이자 행정관료, 왕양명의 삶·사상
군사 전략가이자 행정관료, 왕양명의 삶·사상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5.16 20:04
  • 게재일 2019.0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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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책’
둥핑 지음·글항아리 펴냄
역사·1만6천원

양명학은 중국의 주류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의 대안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수신(修身)과 신민(新民)을 강조했던 주자(朱子)와 달리 안신(安身)과 친민(親民)을 중히 여겼다. ‘칼과 책’(글항아리)은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의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소설처럼 쉽게 풀어냈다. 그간의 양명학 관련서 가운데 왕양명의 생애에 관해 가장 일상적이고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흔히 학자들이 사상가로 알고 있는 왕양명은 사실 많은 전쟁터를 누빈 군사 전략가이자 백성의 삶을 돌보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왕양명이 몸을 닦기보다는 몸을 보호해야 한다(안신)고 했으며, 백성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했는지(친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왕양명은 절강성 여요에서 왕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이’하고 ‘특출’났으며 열두 살에 이미 자신이 성인(聖人)이 되고자 공부한다고 밝히곤 했다. 열다섯의 나이에 군사 정세를 살피러 혼자 변방으로 나가 기마와 궁술을 익혔고, 당시 사상계의 주류 학문인 주자학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을 시기하는 이가 많았던 탓인지, 당시 관료의 자리가 꽉 차 있던 탓인지 왕양명이 과거에 급제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여느 위인전에 나오는 장원 급제 이야기와 달리 왕양명은 과거 시험에 두 차례 이상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실패에 개의치 않고 실천적 자세로 학문을 탐구하는 데 열중한다.

이후 유학을 성학(聖學)으로 삼고 이에 집중하긴 했지만, 왕양명은 학문을 수양하는 데 도교의 양생술, 불교의 선종 사상을 포괄하기도 하는 등 그 경계가 없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백성을 돌보는 관료로,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로 바쁘게 지내는 동안에도 학문 연구와 강학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서른네 살부터 제자를 받아들여 숨을 거둘 때까지 성인의 도를 가르쳤다. 유배지인 용장에서 왕양명은 주자가 이야기한 격물치지설 즉, 사물을 관찰한 후 지식을 얻은 후에야 천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관점이 세상의 이치와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 ‘용장에서 도를 깨쳤다’고 하여 이를 ‘용장오도(龍場悟道)’라 한다.

용장오도 이후 왕양명은 자신의 사상 체계를 공고하게 다져갔다. 그는 앎과 행동이 분리돼 있지 않으며 인간 본연의 마음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를 정리해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학설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골방 철학자가 아닌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채 정치와 전장을 누빈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의 사상 체계를 간단히 말하면 ‘양지(良知)’라고 할 수 있는데, 왕양명은 ‘양지에 이른다’ 혹은 ‘양지를 다한다’라는 뜻의 치양지를 통해 ‘지’와 ‘행’의 합일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고 할 때는 먼저 그의 심지를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힌다. 이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인내심을 키움으로써 지금껏 할 수 없었던 사명을 감당케 하려 함이다.” 이 말은 왕양명의 일생에 그대로 투영된다. 일찍이 성인이 되고자 마음먹고, 공명정대한 태도로 관료직을 수행한 그에게 암울한 현실 정치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파란만장하고 고달픈 인생 역정은 그 길을 의연하게 걸어간 그에게 사상과 철학의 정신적 동력이 됐다. 왕양명이 고결한 인품으로 불세출의 위업을 달성하고, ‘기이하고 특출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입덕(立德)’ ‘입업(立業)’ ‘입언(立言)’ 이 세 측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뤄 후대에 ‘삼불후(三不朽)’라 평가받았다.

이른바 이치만을 따지는 이학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마음에 주목하는 왕양명의 심학(心學)은 많은 지식인에게 논쟁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간으로부터 주목받았다. 그의 학문과 사상 체계는 하나의 학문이 돼 한 시대를 풍미했고, 명 중엽 이후로 ‘양명학’으로 불리게 된다. 양명학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마음을 어떻게 수양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종교의 장벽을 넘나들며 유(儒), 불(佛), 도(道) 3교의 일치론을 낳았다. 또한 양명학은 주자학 일색이던 동아시아 사상 체계의 흐름을 바꾸고, 근현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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