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광목빛
흰 광목빛
  • 등록일 2019.05.16 19:29
  • 게재일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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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희 덕

먼 길 가는 모양이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 아래

어떤 부부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

조금은 떨어진 선 두 사람은

목도리가 같아서인지 한눈에 부부 같다

지아비가 한 손을 올린 채 앞으로 나와 있고

지어미는 조금 뒤에서 웃고 있다

시골버스의 유일한 승객인 나는

그 부부를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지만

운전기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나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이 늘 거기 서 있으면서도

한 번도 버스를 탄 적이 없다는 듯이

아아, 버스로는 이를 수 없는 먼 길 가는 모양이다

그 부부는 이미 오랜 길을 걸어 저기 당도했을 것이고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갈하게 풀을 먹인 광목 목도리는

누가 둘러주고 간 것일까

목도리에 땀을 닦고 있을 그들을 뒤돌아보니

미륵 한 쌍이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시인이 시골 마을 앞에서 흰광목 목도리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노부부가 기다린 것은 버스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그저 하염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일 것이다. 버스 떠나고 그들은 얼마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길가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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