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이라면 의당 그래야한다. 수많은 정치역정속에서 가까스로 가다듬은 자신의 국정철학에 확신을 갖고, 초지일관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어야 한다. 전세계 주요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형적 특수성에다 자원빈국으로서 수출주도형 국가이자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역할이 그리 쉬울 리 없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국왕이 통치하는 봉건제 국가를 유지해오다 우리에 비해 서양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받고 식민지 국가로서 온갖 설움을 겪었다. 일제 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피땀어린 독립운동이 이어졌고, 그런 노력끝에 제2차 세계대전이 원자폭탄의 공습을 받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이후 민주주의 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지 1백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나라다. 그러니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 아래 1백년 이상 나라살림을 꾸려온 서구 열강이나 미국 등과 비교할 때 이제 겨우 밥술이나 뜨는 수준이지 정면승부할 정도의 국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어쩌면 고난과 고뇌의 세월을 보내야할 숙명이 예정된 직책일 수 밖에 없다.

오늘의 이 나라를 그나마 유지하려면 분단국가이자 정전국가인 이 나라의 평화를 확보해야 하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해 성사시켜야 했을 것이고, 별다른 지하자원 하나 없는 자원빈국이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사정을 생각하면 어떡하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서 수출을 늘려나가야 한다. 국내문제는 더욱 속시끄럽다.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은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정책 하나하나에 제동을 걸고, 개혁입법 하나 하려해도 과반을 넘는 의석을 갖고도 국회선진화법에 막혀 옴짝달싹하기 힘들다. 그나마 요즘은 여야4당이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 패스트트랙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지만 궁여지책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몽니정치’에 가로막혀 적시돌파를 하지 못한다.

제일 큰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다. 구호가 아무리 좋아도 먹고살기 힘들면 정치는 ‘말짱 황’이란 건 이미 학습이 끝난 명제다. 그런데 그게 쉽지않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촛불정권인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란 경제정책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올림으로써 소비를 진작시켜 궁극적으로 국민소득을 올리겠다는 이상론적인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2년간에 걸친 정책추진 결과 여러 경제학자나 국가원로들의 진단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이 최고 핵심과제로 꼽은 청년 고용지표가 계속 악화되는 걸 잡지 못하고 있으니 방향선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성과가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으며, 특히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안착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통계와 현장의 온도차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상황인식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낡아빠진 사회주의 경제에 심취해있다”라고 비난했고,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문 대통령을 가리켜 “달나라 사람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이 이대로 내달릴 경우 임기내내 자신감이 충만하게 넘친 대통령이란 평판을 받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럴 경우 문 대통령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아마, 반드시 기자들의 이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집권 3년차에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대통령이 강조하던 청년고용지표도 나빠졌을 때 경제정책 변화를 거부하고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한 자신감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이러니 어쩌랴. 힘겹고 어려운 이 나라 대통령에게 자신감은 꼭 필요하지만 ‘과유불급’이란 금언에 한 수 접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