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지·쌍목탑 추정지 발견
십이지신상 등 700여점 유물도
6세기 후반~7세기 사이 조성
오늘 발굴 현장 공개키로

경주 황복사(皇福寺)가 신라가 지은 첫 쌍탑식 사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사료가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사적 제163호 경주 낭산 일원에 있는 황복사 추정 부지에서 금당지(법당이 있는 자리)와 쌍탑(동·서 목탑)지·중문지(中門), 회랑지(回廊, 지붕이 있는 긴 복도) 등이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추정지를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또한 통일신라 이후에 조성된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과 함께 조영된 대석단(大石壇) 기단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 회랑지, 금동입불상, 금동판불, 비석 조각, 치미, 녹유전을 포함해 700여 점의 유물도 확인했다.

사찰을 처음 조성한 시기는 중문터 적심(積心·주춧돌 위에 쌓는 돌무더기)과 단각고배(短脚高杯·짧은다리굽다리접시), 연꽃무늬 수막새를 근거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사이로 추정됐다.

황복사는 삼국유사에 654년 의상대사가 29세 나이로 출가했다고 기록된 절로, 의상대사가 허공을 밟고 올라가 탑돌이를 했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했을 때 나온 금동사리함 뚜껑에서 ‘죽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세운 선원가람’임을 뜻하는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라는 글자가 나와 왕실사찰로 추정돼 왔다.

연구원 측은 “목탑은 띠 모양 기초 위에 원형 적심(積心·주춧돌 위에 쌓는 돌무더기)과 초석을 올린 형태”라며 “삼층석탑은 효소왕 1년인 692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그전에 목탑을 올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한편, 성림문화재연구원은 16일 2회(오후 1시 30분과 3시)에 걸쳐 발굴현장을 출토 유물과 함께 공개한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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