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캐틀린은 1832년 하버드를 졸업하고 미주리 강 상류 인디언 부락을 찾습니다. 추장들의 초상화를 그려 큰 사랑을 받지요. 그의 그림은 정면에서 보면 시선도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옮기면 초상화 시선도 보는 이의 눈을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죠. 마치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그린 덕에 인디언들은 조지 캐틀린을 마법사로 여기고 존중하며 예우합니다. 덕분에 캐틀린은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인디언 비밀 의식(ritual)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조지 캐틀린은 훗날 이 의식에서 받은 충격을 그림으로 남깁니다. 전사로 거듭나는 젊은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 장면입니다.

성인식이 열리기 5일 전부터 모든 음식을 끊습니다. 성인식의 출발입니다.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이번에는 길이 40∼50㎝ 막대기를 아이들의 몸에 밀어 넣습니다. 등, 어깨, 가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등 몸의 구석 구석에 막대기를 찔러 넣고, 공중으로 끌어올려 대롱대롱 매달아 놓습니다. 물소 해골을 하체에 꽂힌 나무 막대기에 걸쳐서 하중이 더 실리도록 만들지요.

아이들이 공중에 매달려 막대기로 얻어 맞고 빙글 빙글 몸이 돌아가면 결국 정신을 잃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신을 잃게 되면 그때 비로소 땅으로 내려지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정신이 돌아오는 즉시, 두 명의 거구의 사내들이 한 아이를 양쪽에서 붙잡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돕니다. 아이들의 몸에서 막대기가 다 빠져나올 때까지 몸을 흔드는 거죠. 이런 과정은 아이들을 완전히 파김치로 만들어 버립니다.

조지 캐틀린은 말합니다. “인디언이 아이에서 전사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은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완전한 비움을 경험함으로써 세상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웁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은 이것이지요.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모든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끝내는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 탐욕, 아집, 포기하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는 내 의견, 내 정당성, 자기 변명 등에 대한 철저한 죽음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온전한 포기, 완전한 무장해제를 내 삶에서 경험해 보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 대해 진정한 ‘성찰’을 시작할 자격을 얻게 될테니까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