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전과 참외 장아찌… 입맛 당기는 생소한 음식들
오이전과 참외 장아찌… 입맛 당기는 생소한 음식들
  • 등록일 2019.05.15 19:51
  • 게재일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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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와 오이, 그 혼란 사이에서

오이, 무, 앙파 등을 이용한 김치. 서양의 피클과 닮았다.
오이, 무, 앙파 등을 이용한 김치. 서양의 피클과 닮았다.

조금은 지저분한(?) 풍경으로 오이, 참외 이야기를 시작한다.

1960년대 농촌, 초가집 마당 한 귀퉁이에 거름더미가 있었다. 열 살이 되지 않았던 나는, ‘통시’에 가지 않고 거름더미에 바로 ‘응가’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어린아이니까. 무더운 한여름의 어느 저녁. 거름더미에 응가를 했다. 며칠 후 거름더미에 싹이 돋았다. 아, 그 무렵 먹었던 참외의 씨앗. 아름다운 참외 넝쿨은 여름 내내 죽죽 뻗었다. 뿌듯한 심정으로 거름더미에서 아름답게 자라는 참외 넝쿨과 꽃을 바라봤다. 이제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샛노란 참외가 달릴 것이다. 이른 가을, 서리가 내렸다. 비실비실, 참외 넝쿨은 시들어갔다. 조그맣게 열렸던 참외는 쪼그라들었다. 내 생애 첫 참외 농사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났다.

◇ 오이는 친척이 많다

참외는 진과(眞瓜)다. ‘과(瓜)’는 오이다. 진과는 참 오이, 참외다. 맛이 달다고 ‘첨과(甛瓜)’라고도 한다. 참외도 오이 종류다. 수박도 오이 종류다. 서과(西瓜)다.

‘서쪽에서 온 오이’가 수박이다. 우루무치 지방은 중국의 서쪽이다. 건조하고 덥다. 포도, 수박, 참외, 살구가 모두 맛있다. 서과(西瓜)는 서과(西果)로도 표기한다. 서쪽에서 온 과일이라는 뜻이다. 서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의 문물이 우루무치를 통하여 들어온다. 실크로드 상의 도시다. 오이, 참외도 이 지역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호과(瓠瓜)는 박이다. ‘박 오이’다. 역시 오이 중의 한 종류로 여겼다. 남과(南瓜)는 호박이다. 우리는 오키나와, 규슈 등을 ‘남(南)’ 혹은 남방(南方)으로 여겼다. 선조들은 호박이 오키나와나 규슈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여겼다.

모과도 오이와 연관이 있다. 모과는 ‘목과(木瓜)’에서 유래했다. ‘나무에서 자라는 오이’쯤 된다. ‘과갈(瓜葛)’이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과(瓜)’는 오이, ‘갈(葛)’은 칡이다. 과갈은 오이나 칡넝쿨같이, 이리저리 무수히 얽힌 일가친척들을 이르는 표현이다.

오이는 참외와 늘 헛갈린다. 예전 기록에도 참외와 오이는 혼란스럽다.

“참외밭에서 신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라는 말은 “군자는 오해받을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위나라 조식(曹植, 192∼232년)의 ‘군자행(君子行)’의 문구다. 참외밭이 아니라 오이밭이다. ‘오얏나무’도 혼란스럽다. 오얏은 자두[紫桃, 자도]다.

오이는 채소, 참외는 과일로 여기지만 참외도 채소의 한 종류다. 정확하게는 과채류(果菜類)다. 옥담 이응희(1579~1651년)의 ‘옥담사집’ 만물편_소채류에서는 참외를 여러 가지로 가르고, 참외와 오이도 분간했다.

참외[眞瓜] 당종과 수통은 방언이다. [唐種水筒用方言]

참외란 그 이름 뜻이 있으니/그 이치를 내가 궁구할 수 있네/몸통이 짧으면 당종(唐種)이라 일컫고/몸통이 길면 수통(水筒)이라 부르지/속을 가르면 금빛 씨 흩어지고/쪼개서 먹으면 꿀처럼 달아라/품격이 온통 이와 같으니/서과(西瓜)란 말과 뜻이 같으리.

당시 참외 품종 중 ‘당종’과 ‘수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몸통이 짧으면 당종, 길면 수통이다. 옥담은, 오이에 대해서도 정확히 표기한다. 잘 익은 오이는 누런색이다. 그래서 황과(黃瓜)다.

오이[黃瓜]

빈 땅에 새로 채마밭을 만들어/오이를 가꾸는 데 재미를 붙였어라/몇 촌 길이 푸른 옥이 주렁주렁/일 척 크기로 황금빛이 빛나누나/총총 썰면 전 부쳐 먹기 좋고/통째로는 김치 담그기 좋아라/무엇보다 좋은 건 더운 여름철/씹어 먹으면 답답한 가슴 시원해져.

오이는, 열매를 갓 맺었을 때는 몇 촌 길이의 옥같이 푸른색이고, 다 자라고 나면 30㎝ 정도 되는 누런색이다. 언젠가 꼭 한번 보고 싶은 것이 ‘오이 전’이다. 별맛이 있을까 싶지만, 옥담이 “총총 썰어 전 부쳐 먹었다”고 하니 호기심이 든다. 옥담 시절에는 오이 전도 있었다.

울외. 오이와 닮았다. 늙은 오이, 노각과는 다르다. 일본의 ‘나라즈케’는 우리나라 울외장아찌다.
울외. 오이와 닮았다. 늙은 오이, 노각과는 다르다. 일본의 ‘나라즈케’는 우리나라 울외장아찌다.

◇ 오이의 역사, 뿌리가 깊다.

흔히 김치 이야기를 할 때 중국의 ‘오이 김치’를 이야기한다. ‘저(菹)’는 넓은 의미로 김치다. 공자(BC 551~BC 479년)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시경 소아(詩經 小雅)’ 편에 오이지가 등장한다.


“밭 속에 작은 원두막[廬]이 있고, 밭두둑에 오이[瓜]가 열려 있다. 이 오이를 깎아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복을 받는다.”

원두막이라고 표기한 ‘여(廬)’는 농막(農幕)이다. 농막과 원두막은 다르다. 농막은 농사를 짓기 위하여 현장에 새운 가건물이다. 원두막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하여 논밭에 세운 것이다. 원두막이든 농막이든, 오이밭에 가건물을 세웠음은 이 시대에 이미 오이 농사가 널리 퍼졌음을 뜻한다. 오이의 역사는 깊고 길다. 무려 2천500년 전이다.

중국 진(秦)나라 소평(邵平, 생몰년 미상)은 진나라에서 ‘동릉후(東陵侯)’의 벼슬을 지냈다. 진나라가 망하자 소평은 평민을 자처, 장안성(지금의 서안) 동쪽에 오이를 심고 생계로 삼았다. 그가 심은 오이가 오색(五色)을 띠고 맛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동릉후의 오이’ 즉, ‘동릉과(東陵瓜)’라고 불렀다(사기 소상국세가). 오이는 가장 널리 재배, 사용한 작물이다. 오이는 일상사 가까이에 늘 있었다.

벼슬아치들의 임기를 이를 때, ‘과년(瓜年)’ ‘과한(瓜限)’ ‘과만(瓜滿)’이라 한다.

모두 ‘오이 과(瓜)’로 표기한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4년(1738년) 7월 15일의 기사 중 일부다.

형조 판서 김시형이 아뢰기를 “신이 영남 방백으로 있었을 때 이진환이 진주 영장(晋州營將)에서 과만(瓜滿)하여 체직되었으므로, 신이 그의 재질을 애석하게 여겨 전관에게 서신을 보냈었는데, 이어 칠곡(漆谷)에 제배되었습니다.” 하였다.

‘과만(瓜滿)’은 벼슬살이 임기가 다한 것을 말한다. 당시 경상관찰사로 일하던(1732년) 형조 판서 김시형(1681∼1750년)이 이진환을 천거, 칠곡으로 보냈다는 내용이다. 벼슬아치의 임기를 ‘과=오이’로 표기했다.

‘오이=벼슬아치의 임기’는 중국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시대 제나라 양공(미상~BC 686년)이 부하들을 힘든 근무지인 변방(葵丘, 규구)으로 보냈다. 불만이 가득한 이들에게 “이듬해 오이가 익을 때 후임자를 보내 교체시켜 주겠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사달이 났다. 이때부터 ‘오이=관리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1479년) 12월의 기사 중에는 오이가 등장하는 서글픈 내용이 있다. 명나라는 사대의 나라다. 명나라 사신들의 폐해는 심각했다. 뇌물을 요구하고, 받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오이를 심어서 그 오이가 익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은 일’도 있었다.

오이, 무, 양파, 고추 등을 이용한 절임채소.
오이, 무, 양파, 고추 등을 이용한 절임채소.

창덕궁 선정전 어전회의.

도승지 김승경(1430∼1493년)이 말한다. “만약 명나라 사신이 오게 된다면 반드시 3, 4월 무렵일 것입니다. 그들은 여름을 지나고 돌아갈 것입니다.” 성종이 대답한다. “어찌 그 정도이겠는가? 지난번에도 오이[瓜]를 심었다가 익기를 기다려 돌아간 일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오이를 좋아하지만, 참외는 모른다. 일본은 1960년대 무렵 ‘프린스 멜론’을 개발한다. 기존의 참외 품종과 서양의 멜론을 교잡한 것이다. 프린스 멜론이 참외를 대체하면서 참외는 사라졌다. ‘참외’ 발음이 힘드니 ‘차메’다.

경북 성주가 2000년대 초반부터 ‘참외’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성주 차메’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경북 성주의 참외는 세계적이다.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 러시아, 유럽으로 수출한다. 오이가 동북아 3국에 널리 유행하더니, 드디어 오이와 닮은 참외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가히 성주 참외의 ‘과갈(瓜葛)’이다. 아래는 경북매일 기사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중략) “수준 높은 문화행사로 자리 잡은 성주생명문화, 참외축제를 세계적 수준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2019 성주생명문화축제, 제6회 성주참외페스티벌’은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성밖숲 일원을 비롯한 성주 시가지 일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전병휴 기자

장계향(1598∼1680년)의 ‘음식디미방’에는 생치딤채법(生雉沈菜法)이 있다. 오이지에 생 꿩을 더한 김치다.

“오이지의 껍질을 벗겨 속은 도려내고 가늘게 한 치 길이만큼 도독도독 썰어 물에 우려 둔다. 꿩은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침채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다.”

농촌에서는, 풋내 나는 작은 참외는 장아찌로 담갔다. 마치 오이지 같았다. 언젠가 성주의 지인이 참외를 보내주었다. 달고 맛있는 성주 참외를 먹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 거름더미의 참외 넝쿨을 떠올렸다. 그때 그 거름더미의 참외도 장아찌로 만들었더라면?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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