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유행은 강물처럼 흐른다

산업혁명은 값싸고 질 좋은 옷을 대량으로 제공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흐르며 변화한다. 원시인은 입을 거리를 두고 ‘무엇을 실로 쓸 수 있을까’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고민했다. 산업혁명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옷을 대량생산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모두 옷을 입게 된 지금,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질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재화가 부족하고 소비가 많으면 물가는 상승하고 구매욕은 증가한다. 반대로 재화가 많고 소비가 적으면 물가는 내려가고 구매욕은 감소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옷을 입는 것이 특별한 일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옷을 입는 것은 일반화되었다.

옷을 만들기만 하면 소비자가 벌떼처럼 몰리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은 공급자가 상품을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다. 서로 팔려고 경쟁을 벌이며, 소비자는 보다 싸고 질 좋고 스타일도 좋은 옷을 원한다. 옷 한 벌이면 만족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외출복과 실내복을, 평상복과 연미복을 구분해서 입는다. 사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고, 나아가 계절을 더 분절하여 ‘팔계절’ 옷을 입는다.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즐기며, 옷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표출한다. 이러한 취향이 서로 접하고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통합된다. 그런 식으로 커다란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은 새로운 취향과 만나며 변화한다. 우리는 이것을 유행이라 부른다. 유행은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기도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출현하기도 한다. 다수에 의해 유행된 지배적인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소수에 의해 유행된 다양한 스타일도 있다. 유행은 지속이 아니라 변화를 모토로 삼는다. 유행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의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반향하며 인간과 물질문화 사이의 변화를 반영한다. 유행은 강물처럼 흐른다. 이 흐름의 집합을 패션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패션은 역사, 문화, 진화와 마찬가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개된다. 오늘의 패션이 과거의 패션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과거의 패션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곤 하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유행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다시 발 담글 수 없는 강물처럼 흐르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유행과 오늘날의 유행

과거의 패션은 패션을 유행시키는 특정그룹이 존재했다. 상류층이나 연예인이 그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미니스커트 유행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이것을 입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무릎 위 20㎝까지 허벅지를 드러내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풍기를 문란시킨다고 경범죄로 잡혀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서태지나 HOT와 같은 아이돌 스타를 따라하는 패션이 넘쳐났다.

과거의 패션은 엘리트 집단, 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을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top-down)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현대의 패션은 1950년대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전파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다이나믹한 대중의 욕구와 젊은이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상향식(bottom-up) 방식을 통하거나, 특정집단에 의해 수평적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깐깐하게 때로는 느릿하게

19세기 산업혁명기에 공학이 생산속도의 증가를 핵심과제로 삼았다면, 산업이 고도화하기 시작한 20세기 공학은 소비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세기 공학이 물질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고려했다면, 20세기 공학은 새로운 물질의 발명과 발견을 요구받는다. 19세기 공학이 기술 발전을 통한 대량생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20세기 공학은 기술보다는 인간에게 편익과 유용성을 주는 질 좋은 제품의 생산을 중시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공학기술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의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두 소비경향을 보인다. 제품의 특성을 요리조리 따지는 ‘깐깐한 소비족’이 있는가 하면, 소비의 속도를 즐기는 ‘스피드 소비족’도 있다.

깐깐한 소비족은 상술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들은 제품을 분석하고 비교하여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제품을 사려고 한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며, 능동적이고 전문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주체’다. 깐깐한 소비족은 느긋하고 침착하게 소비하면서 그 제품의 질적 완성도에 만족감을 느낀다.

스피드 소비족은 무수한 상품 속에서 마치 햄릿(Hamlet)처럼 ‘이것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저것을 살 것인가, 이것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담스럽지는 않은 가격이면서,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개성적인 상품을 찾아 빠르게 소비한다. 싸면서 질 좋고, 자신의 취향에도 맞는 상품을 빠르게 구매하여 소비가 주는 쾌감을 즐긴다.

△상품의 예술화

달빛을 받으며 한적한 모래사장을 걸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밤은 바다를 닮아 푸르스름하고, 파도소리는 하얗게 흩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맛보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그곳에서 돌아오더라도 파도소리며 별빛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그런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마을 사람은 내일을 위해 이미 잠들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바닷가도 그곳에 사는 사람에겐 그저 일상일 뿐이다.

새로운 것의 운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그것에 언제까지나 취할 수는 없다. 그 풍요로움에 금세 익숙해진다. 옷을 갖고 싶던 사람에게 옷이 주어지면 당분간은 애지중지하겠지만, 그 옷이 생활이 되면 그 옷과는 다른 옷을 찾게 될 것이다. 기왕이면 디자인도 좋고, 옷감의 질감도 더 좋고 색상도 더 예쁜 옷을 찾게 될 것이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디자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핸드폰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누구나 갖게 되자 천차만별의 가격대를 갖게 되었고 소비자는 다양한 기술, 콘텐츠, 디자인을 원하게 되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예술과 일상이 구분되는 시대가 있었다. 중세시대에 예술이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면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시대는 왕이나 귀족 혹은 재력가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산업혁명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게 되자 질 좋고 보기에도 좋은 제품을 찾게 되었다. 생활수준은 그런 식으로 향상된다. 양이 문제였던 시대에서 질이 문제인 시대로, 형식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내용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게 된다. 제품의 사용 가치와 미적 가치가 동시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경계를 허문다. 고귀함과 높은 지위를 버리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며 도처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공학은 예술을 상품 속으로 가져온다. 상품의 예술화, 이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