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성·외모 비하 등은
개그 소재로 삼지 않을 것
‘사람을 웃기는 것’이 본질”

한때 스티비 원더의 ‘파트 타임 러버’(Part Time Lover)가 ‘월요병’(월요일마다 피로가 느껴지는 증상) 노래의 대명사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밤,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엔딩곡인 이 곡이 들리면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과 학생들은 이제 주말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기때문이다.

1999년 9월 1회 방송을 시작한 ‘개콘’이 오는 19일 방송으로 어느덧 1천회를 맞았다.

역대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자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원조로, ‘갈갈이 삼형제’, ‘마빡이’, ‘대화가 필요해’, ‘분장실의 강선생님’, ‘달인’, ‘봉숭아 학당’등 무수히 많은 히트 코너와 스타 코미디언을 낳았다.

하지만 한때의 영광도 이젠 과거일 뿐, 매체 환경이 바뀌고 콩트가 예전만큼 힘을 못 쓰는 시대가 되자 굳건하던 ‘개콘’은 추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SBS TV ‘웃찾사’, MBC TV ‘개그야’ 등 우후죽순 생겨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전부 폐지되고 이젠 ‘개콘’과 tvN ‘코미디 빅리그’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개콘’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개그맨 전유성(70)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에서 열린 ‘개콘’ 1천회 기자간담회에서 “‘개콘’이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날 행사엔 원종재·박형근 PD와 김미화(55), 김대희(45), 유민상(40), 신봉선(39), 강유미(36) 등 원년 멤버들도 참석했다.

수년째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콘’의 부진에 대해 전유성은 “대학로에서 검증을 마친 코너들을 TV로 끌고 와 성공을 했는데 점점 검증 없이 TV에서만 재밌다고 (방송을) 결정하는 게 나태해지고, 식상한 감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한다”라고 진단했다.

원로인 그는 지금까지 ‘개콘’을 거쳐 간 제작진에 대한 불만도 내놨다. “나한테 한 번 정도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PD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번도 없었다”며 “충분히 ‘개콘’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찾아오질 않더라. 물어보시면 대답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 ‘개콘’은 직장인, 초등학생 할 것 없이 화제 코너 유행어를 줄줄따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엔 트렌드에서 뒤처진 형식과 외모 비하·가학성 논란으로 인한 지속적인 부진에 시달린다.

이러한 위기 속에 ‘개콘’ 1천회 기자간담회는 ‘개콘’의 위기 극복 방안과 미래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1천회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지만,이러한 취지를 무색케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르자 일부는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기도 했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개콘’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종재 PD는 “과거에 못 미치는 건 알고 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며 “구체적 성과가 잘 보이지 않아 저도 답답하고 같이 하는 개그맨들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개콘’을 부흥기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원 PD는 “다양한 방법이 많지 않다. 그게 늘 고민”이라며 “솔직히 공개 코미디가 부진한 건 사실이지만, ‘개콘’이 공개 코미디를 떠나서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개콘’이 지속적인 외모·여성·특정 직업군 비하로 점차 시청자들 외면을 받은데 대해선 “최근 ‘개콘’엔 그런 내용은 없다”며 “(사회 변화에 따라) 짊어져야 하는숙명이고 누군가에게 아픔을 준다면 개그 소재로 삼지 않겠다”고 답했다.

전유성, 백재현, 컬투 등과 함께 ‘개콘’ 창시 멤버인 김미화는 “‘개콘’이 처음엔 신선했지만 한 20년 정도 지나오니 식상할 수도 있다”면서도 “공개 코미디가 오늘날 안 맞는 건 아니라고 본다. 조금 더 시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히 더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개콘’으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뒤 다시 ‘개콘’에 복귀한 신봉선은 “예전 시청률이 잘 나올 때만 생각하고 ‘요즘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제약이 너무 많더라. 예전에 재미있고 인기있던 코너들은지금 무대에 못 올린다”라며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실감했다.

박형근 PD는 “KBS는 공영방송”이라며 트렌드에 뒤처진 듯한 공개 코미디와 콩트가 오늘날 지니는 의의를 강조했다.

박 PD는 “이들 장르는 대중문화사에서도 중요하고 KBS가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포기하는 건 외려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하는 거라고 본다”며 “더욱더 한국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20년간 ‘어떻게 웃길까’만 고민했지, ‘어떤 웃음을 줘야 하나, 어떤 웃음이 필요한가’라는 웃음의 본질에 대해선 크게 고민을 못 했다”며 “어쨌든 사람을 웃겨야 한다는 코미디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을 1천회를 기점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