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재 종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방송 하나로

집집의 생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내는 댓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 켜고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

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죄다 보아온 어른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겨울 삭풍을 견디며 당당히 서서 푸른 솔잎을 청청히 뻗친 소나무를 보면서 시인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엄동을 견디며 서 있는 청솔을, 그 푸른 숨결을 본받으려는 시인 정신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