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몰라서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언어가 달라서 안 만나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회동을 놓고 정치권이 주판알만 어지럽게 굴리고 있다. 나라 꼴이 엉망인 작금의 현실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이토록 쉬이 언로를 트지 못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권력 가진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따로’도 만나고 ‘같이’도 만나고 무조건 자꾸자꾸 만나자고 썩 나서는 큰 정치인이 이리도 씨가 말랐나 참으로 한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치지도자들의 만남 추진이 ‘회담 형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황교안 대표와의 ‘일대일’ 단독회담을 요구하는 한국당과 여야 5당 대표와의 ‘원샷 회담’을 고수하는 청와대 입장이 부딪치는 중이다. 뒤늦게 회담의 주제를 넓히긴 했지만, 애초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식량 지원을 논의하자”며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제안한 것부터 적절치 않다. 주제도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지만, ‘5당 대표’라는 형식을 한정한 것 또한 온당치 않다.

우선 문 대통령의 제안과 청와대의 형식 고집은 대범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 부정적으로 보자고 들면, 형식만 ‘대화’로 놓고 ‘아집’만 증명하려는 이벤트를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얼마 전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견해를 들은 문 대통령이 그 이후 무슨 의견을 국정에 반영해 달라졌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 ‘5당 대표와의 회동’이라는 형식에 대한 집착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들러리’ 세우겠다는 저의마저 읽힌다.

정의당은 민주당보다도 한술 더 뜨는 2중대다. 민주평화당 또한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패스트트랙 소동에서 보듯이 현재의 바른미래당 또한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취임 2년이 됐지만,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회담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취임 초기인 2017년 7월과 9월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대표들을 만났고, 지난해 3월 5당 대표와의 회담과 4월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의 단독회담이 전부다.

손바닥만 한 나라에서, 오만가지 난제가 들끓고 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어깃장만 놓는 위정자들을 놓고 민심은 썩어 문드러진다. 수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타협하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피폐한 경제환경으로 신음하는 국민이 즐비하고, 꿈에 부풀었던 ‘한반도 평화’는 말짱 도루묵이 될 형편에 놓였다. 불이 나서 집이 활활 타고 있는데 양동이를 쓸 것인가 바가지를 쓸 것인가를 놓고 언제까지 멱살잡이를 계속할 참인가. 소인배투성이 지도층의 찌질한 정치가 온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