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불상(佛像) 이미지 밑에 로켓 엔진을 달아 하늘로 쏘아 올리는 합성 패러디 사진들이 인터넷을 장식했다는 뉴스는 실소(失笑)를 터트리게 한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불상 발사체’라고 한 합참의 발표를 희화화한 민심의 발로다. ‘미사일이 아니라면 그럼 새총이란 말이냐?’라는 일각의 비아냥도 폭소를 부른다.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모습을 홍길동전에 비유한 ‘홍길동 정권’이라는 작명 또한 신랄하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평화 쇼’ 국면에서 엉망진창이 된 나라의 국방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부 여당이 지난 4일 북한이 동해안에서 감행한 발사실험을 굳이 ‘미사일’이 아니라고 두둔하는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9일 평양 북방 내륙인 구성에서 동해안을 향해 발사한 두 발의 미사일이 ‘탄도’냐 아니냐를 놓고 한심한 논란을 지속하고 있다. 합참과 국방부는 웬일인지 며칠이 지나도 계속 ‘분석 중’이란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제주도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무기로 밝혀지고 있다. 실제 전쟁이 벌어져 남한 전체가 핵폭탄으로 초토화가 된 뒤에도 국방부는 계속 ‘분석’만 하고 있을 참인가,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인가 여부를 놓고도 당국의 언급들은 도무지 헛갈린다. 도대체 위반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거의 말장난 수준이다.

신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률적으로는 위반이냐 아니냐를 따져볼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합의에서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문구상으로만 보면 위반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군사적 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전면 중단하자는 취지는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입장은 더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북쪽에 있는 호도반도 일대의 발사를 놓고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포병 사격훈련 금지 구역을 벗어난 지역이어서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9일 미사일 발사에는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모두 짜 맞춘 듯이 북한의 도발을 ‘합의 위반’이라고 말하지 않고 ‘취지 위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발사체를 ‘복수의 탄도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활동 중단’을 명시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란 의미다. 우리 국방부의 “단거리 미사일이라고만 말하겠다”면서도 “탄도가 아니라는 말은 안 하겠다”는 교졸한 입장과 대비된다. 우리 군이 이렇게 이상한 표현에 발이 묶인 것은 북한이 유엔 결의를 어겼다는 사실을 애써 흐리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대목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 북한의 발사에 대해 “아무도 그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는 10일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그것들(북한의 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이었다”면서 “나는 그것이 신뢰 위반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미국은 언제나 미국 편’이라는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만 아니라면 언제나 ‘북핵’ 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이 ‘단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시점에 우리 국방부는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 처지가 돼 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남북대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한다. 어느 날 갑자기 처절한 비극이 되어버린 ‘홍길동전’ 무대 위에 갇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안팎으로 위태로운 이 나라가 정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