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에 밀리자 ‘위기의식’ 발로
다루지 않은 소재·인물 조명
캐릭터·만듦새 평가는 엇갈려

‘녹두꽃’. /SBS 제공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는 지상파가 다시 사극 카드를 꺼내 들 명분을 제공했다.

제작비·배우·대본 ‘3중 기근’으로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에 밀려 침체기가 길어지는 지상파 내 위기의식의 발로로도 읽힌다.

최근 SBS TV 금토극 ‘녹두꽃’, MBC TV 토요극 ‘이몽’이 차례로 전파를 탔으며 KBS 2TV 역시 올 하반기 ‘의군’ 방송을 예고했다.

‘이몽’.  /MBC 제공
‘이몽’. /MBC 제공

◇ 근대 사극으로 소외된 시대와 인물을 조명하다

지상파가 ‘웰메이드 사극’을 제작·방송해줘야 한다는 요구는 늘 있었다.

늘 왕 역할을 맡아 ‘수종’(秀宗)으로 불리는 최수종도, 조선 태종 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유동근도 수차례 공개적으로 지상파 대하사극 부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사극 제작을 회피해온 지상파들은 임정 100주년이라는 명분이 생기자 근대사극으로 눈을 돌렸다.

공통점은 과거 사극이 조명하지 않은 시대와 인물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녹두꽃’은 동학농민운동을, ‘이몽’과 ‘의군’은 일제강점기를 내세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2일 “동학을 전면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그동안 없었다. 역대 정권들이 피한 측면도 있다. ‘민중의식’도 촛불집회 등 과정을 통해 되살아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연원을 따라가 보면 동학”이라며 “이젠 동학을 소재로한 ‘녹두꽃’ 같은 작품이 나올 때도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몽’의 주요인물인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도 “김원봉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한 인물인데 그동안 다루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특별한 드라마 장치 없이 인물만 다뤄도 드라마가 될 만한 인물”이라며 “민감하고 예민한 지점이 있었는데 이제 막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중근 역시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 조명된 사례는 KBS ‘왕조의 세월’(1990)과 SBS TV ‘의사 안중근’(1996), 1990년대 두 차례를 제외하면 없다.

이렇듯 지상파들은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들이면서 투자할 명분과 가치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장르이지만, 의미와 재미를 다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몽’의 경우 항일코드를 통해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 중에도 중국의 합작투자까지 끌어내며 저변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군’도 한중 합작투자와 중국 내 촬영 등을 추진 중이다.

사극에 목말랐던 시청자의 호평도 적지 않다.

‘녹두꽃’ 시청자인 네이버 아이디 ‘kims****’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엮이는 서사가 흥미롭다”고, ‘rkdh****’는 “전봉준 장군만이 영웅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평범한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호평을 보냈다. ‘이몽’의 시청자 ‘블랙***’은 “아이들에게도 역사를 바로 가르쳐줄 수 있는드라마가 나와서 반갑다”라고 적었다.

‘의군’.  /KBS 제공
‘의군’. /KBS 제공

◇ 시청률 히트는 아직

인물·연출 평가도 반반. 다만 아쉬운 부분은 기대 이하의 시청률, 그리고 작품 완성도와 캐릭터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이다.

‘녹두꽃’은 첫 회 11.5%(닐슨코리아)까지 시청률이 올랐지만 이후 6~8%대를 유지 중이다. 전작 ‘열혈사제’에 비하면 아쉬운 수준이다. 정치사극에서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보여준 정현민 작가의 작품임을 고려해도 그렇다. ‘이몽’도 5~7%대로 출발해 화제성과 비교하면 아직 목마른 성적이다.

지난해 tvN이 의병 소재로 포문을 연 ‘미스터 션샤인’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영상미를 보여준 덕분에 시청자 눈은 한층 높아졌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암살’, ‘밀정’ 등 영화도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녹두꽃’도 ‘이몽’도 의미는 충분하지만 재미까지 담보하고 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라며 “‘녹두꽃’은 인물이 변화하면서 느껴지는 재미가 있을 텐데 초반부터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조금 부족하다. 전체적으로 무겁기도 하다. ‘이몽’은 연출이 생각보다 밋밋하고, 스토리도 짜임새가 떨어져 좋은 기획의도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이몽’은 역사적으로 평가가 엇갈려 정치권에서도 한창 논쟁 중인 김원봉을 주인공 중 하나로 내세워 시청자 의견도 분분하다.

제작진은 김원봉 일대기나 위인전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개인에 대한 조명이 아니라 주변에서 공조한 인물들을 통해 공감을 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녹두꽃’ 역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민초를 조명했다.

그럼에도 작품에서 해당 인물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고, 논쟁은 진행형이다.

‘이몽’ 시청자 ‘roka****’는 “김원봉의 항일투쟁은 훌륭하지만 북한 건국에 참여하고 한국전쟁 때 남침에 관여했으므로 미화해선 안 된다”라고 우려했다.

반면, 공희정 평론가는 “요새 드라마 트렌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를 그리는 것”이라며 “‘녹두꽃’도 ‘이몽’도 특정 실존 인물을 내세운 히어로극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연합을 통해 삶을 바꾸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래서 내용도 힘있게 쭉쭉밀고 나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