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참

그림 속의 남자는 항아리 위에 부엉이와 까마귀와 미루나무를 그려 넣고 있다 여자가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백사장에 누워 당근 주스를 마시는 사이 그림 속 남자는 항아리를 들고 거대한 아궁이 안으로 들어간다 아궁이 안에는 비밀통로가 있다 남자는 비밀통로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간다 박쥐들이 붉은 눈을 깜박거리며 아궁이 밖으로 빠져나가 어두워진 남자의 마당을 날아다닌다 그림 속에서 달이 뜨고 별똥별이 떨어지고 개들이 컹컹 짖는다 당근 주스를 다 마신 여자는 기지개를 켜고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후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려다 달라진 자신의 그림에 흠칫 놀란다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와 항아리 위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는 남자는 시인이 방안에 누워 읽고 있는 소설책 속의 인물들이다. 인간이 근대적 위계질서랄까 권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욕망을 지켜주려는 시인의 의식이 잘 나타난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