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교무실 뒤뜰이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하다. 점심시간이면 으레껏 학생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자신들의 놀이방식으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학생들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시공간을 종횡무진 한다. 무리를 이룬 학생들은 그 학생들대로, 혼자인 학생은 또 그 나름대로 1시간이라는 짧지만 귀한 시간을 설계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 설계자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있는 것이 산자연중학교 점심시간의 모습인데, 아이들이 교무실 뒷공간을 점령한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그 공간은 도로와 학교를 구분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은 공간이어서 선생님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은 들풀들의 천국이다.

창문을 통해 본 그 곳에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4명의 학생이 있었다. 아이들 손에는 호미로 보이는 물체가 들려 있었다. 필자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얘들아, 거기서 뭐하니?” 아이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였다. 필자가 아이들의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몇 분이 지나고 그 중에 3학년 아이가 고개를 들어 필자의 참견을 허락하였다. “교감 선생님, 해바라기 심고 있어요!” 짧은 대답에는 더 이상 방해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필자는 아이들이 일궈 놓은 3평 남짓한 공간을 보았다. 녹색의 힘을 한껏 자랑하기 시작한 풀들을 뒤엎고 만든 공간은 눈에 확 띄었다. 질서정연하게 이랑까지 만든 학생들은 해바라기 모종을 이랑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필자를 보면서 외쳤다. “교감 선생님, 점심시간 얼마나 남았습니까?” “10분!” “얘들아 조금만 서두르자, 누구야 빨리 가서 물 좀 떠와!” 3학년의 정중한 지시에 무리 중에서 지명을 받은 아이가 수돗가로 뛰어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이들의 호흡은 프로 팀을 능가하였다. 점심시간 마침 예비 종이 울림과 동시에 아이들은 작은 해바라기 밭을 완성했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마을이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내용과 같이 스스로 숨은 땅을 찾아내어 해바라기를 심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김을 매고 땅을 일군다. 가급적이면 무딘 호미로 땅을 달랜다. 해바라기의 키를 생각할 줄 아이들은 이제 막 그늘의 품을 키우기 시작한 키 작은 나무를 피해 해바라기 밭을 일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름이 된 해바라기 밭의 가을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마을이 있는 학교의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필자는 필자에게 이런 특권을 준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필자가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분들이 있다. 학교가 소재한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마을 어르신들이 그 분들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서울, 인천, 강원 등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동네로 봐서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께서는 행복 교육을 찾아 멀리서 온 학생들을 친 손주 이상으로 보살펴 주신다. 그리고 기꺼이 학생들을 위해 인성수업을 맡아 수업을 해 주시고 있다. 수업 제목은 “마을 인성 교실”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 8시30분 산자연중학교에 오시면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는 참의미의 인성 수업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가정의 달, 감사의 달 5월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학교에서는 가정과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영화에서 보던 끔찍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우리 사회는 어쩌면 사건 공화국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학교에서부터 의미 없는 교과서와 시험 따위는 과감히 버리고 그 자리에 사람향기 가득 한 마을을 들이면 어떨까! 아니 정말 더 늦기 전에 마을을 학교로 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