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는 고치에서 빠져 나오는 나방을 관찰·연구했다. 나방은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하나 뚫고 그 틈으로 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썼다. 그렇게 아주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번데기는 나방이 되어 공중으로 훨훨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어느 날 윌리스는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나방이 안쓰러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칼로 고치의 옆부분을 살짝 째주었다. 나방은 쉽게 고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방은 영롱한 빛깔의 날개를 가지고 힘차게 날아오른 반면, 쉽게 고치에서 나온 나방은 날개의 무늬와 빛깔도 곱지 않았고, 몇 차례 힘없는 날갯짓을 하고는 죽고 말았다. 그렇다. 어려운 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한낱 나방의 삶도 그럴진 데, 하물며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는 말해 무엇하랴.

지난 한 주 동안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여야가 난장판을 치른 뒤 패스트트랙 추진에 성공한 여야4당과 저지에 실패한 자유한국당의 득실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원내 제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관철·저지로 엇갈렸지만 각각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여야당 모두 자신들의 구성원과 지지층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계기로 승화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번 패스트트랙 강행 자체가 현 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야당의 공격을 막고, 시선을 돌리기 위한 집권 세력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또 야당이 법안추진에 항의하고 반대하며 소리를 지르고, 국회 회의장 문앞을 점거해 몸싸움을 벌인 일련의 행위들은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발의한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됐다는 점도 거북하다.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이 ‘광화문 문재인STOP집회’에 3만여명이 모였다며 지지층 결속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놓는 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다.

극우로 치부되는 대한애국당의 ‘박근혜 대통령 살리기 집회’에도 3만여명의 인파가 모이는 광화문이고, 그나마 당력을 기울여 동원한 인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친박과 비박계로 나뉘어 싸우다가 시위와 농성과정에서 동지애 또는 전우애로 뭉칠 기회가 된 점은 평가할만 하다. 그렇다 해도 소탐대실이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골수 보수나 적극적인 한국당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행보만 거듭해선 전세를 뒤집을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한국당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르는 이유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국당은 중도보수를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마련에 올인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소득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등으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현 정부와는 차별화된 새 비전을 제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여당과 싸우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추경예산 심의를 보이콧하고, 광화문 집회 등 장외투쟁에 매달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싸워선 안된다. 포항지진이나 강원도 산불같은 재해추경예산은 하루빨리 심의에 나서 통과시키고, 포퓰리즘 퍼주기 예산이나 불합리한 예산편성은 견제하며, 현안이 되는 법안의 불합리한 점은 국민앞에 낱낱이 반대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대로 국회밖에서 장외투쟁만 일삼다가는 자칫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조차 나눠 짊어질 수 있다.

특히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정당으로 거듭나야한다. 그런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방으로 거듭나듯 제1야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