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들을 충만하게 누립니다. 신영복 선생은 20년의 옥고를 치르면서 달라졌습니다. 글 좀 쓰고 강연하고 살아가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남겼습니다. 깊은 고독과 절망, 답답함이 그를 고전으로 이끌었습니다. 감옥은 새로운 학교였습니다.

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교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 한 가운데서 홀로 서기를 시도합니다. 20년 동안 사막에서 오로지 자신과 신을 대면한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에게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사막으로 몰려옵니다. 더 깊은 사막으로 피해야만 했지요.

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 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이렇게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 “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 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훌륭한 스승들은 삶으로 일깨우지요. 수사와 현란한 말씀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 삶의 궤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해마다 찾아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제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1년을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스승과 제자.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우리 시대에도 가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