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의 신기함.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것도 이 신기한 세상살이의 하나일 것이다.

하루하루 그렇게 자꾸 반복을 했으니 쉬워질 만도 하건만,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도무지 쉬운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다.

무엇이 이렇게 힘들 게 하는 것이냐, 하면, 무엇보다, 그 원인은 자기 잘못에 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없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절대 완벽할 리 없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모자라지도, 그릇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남들이 그런 오기를 쉽게 봐줄 리 없다. 넘어가 줄 리 없다.

다음 원인은 ‘남들’의 냉담함에도 있다. ‘나’ 빼놓고는 다 ‘남’이니 ‘남들’일 수밖에 없는데, 어떤 ‘남’도 ‘나’를 쉽게 받아들여 주는 법이 없다.

어느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나’랑 생각이 다르다는 게 재미있지 않아? 그때 아하, 했다. ‘나’랑 다르니까 세상이 재미있는 거다. 그런데 이 ‘나’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는 ‘남들’이란 얼마나 차가운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 ‘남들’도 자기 시점에서 보면 전부 ‘나’들이기 때문이고, 지구가 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차가울 수밖에 없다.

원래 세상이란 그렇게 자기 아닌 사람을 재밌게 여기지 않고 달라서 싸워야 할 상대로 보는 법일까? 그것이 삶의 원칙일까? 하면 그런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세상은 편안한 날, 평화로운 날, 그러니까 ‘영일(寧日)’이라는 게 없지 않은가 한다.

그래서인지, 살다 보면 남한테 무서운 얼굴 보이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얼굴들은 확실히 무섭다. 이런 무서운 얼굴들 때문에 겪는 무서움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무서움도 세상살이를 어렵게 하는 큰 요인일 것 같다.‘나’란 본디 결함 많은 존재인데, 그 ‘나’를 보는 ‘남들’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들을 한대서야 세상을 어떻게 평온히,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그 무서운 얼굴 때문에 한참 무섭다가도 이윽고 우습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호랑이 행세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는 호랑이가 되지 못하고,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고, 다만 호랑이만 되고 싶은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하다가도 우스워지곤 한다.

호가호위다. 자기 뒤에 호랑이를 세워 두고 여우가 호랑이인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한참 이 사람이 호랑이 행세를 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정작 호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미 호랑이도 없는데 있는 줄 알고 호랑이 행세를 하는 여우라. 우습다. 우습기 짝이 없다.

세상은 재밌다. 나랑 다른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런 호가호위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 더 재밌다. 나랑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을 자기 뒤에 세워두고 마치 자신이 그 떠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자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자는 다만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우선은 스스로 호랑이인 사람일 것이다.

그 다음은 그 호랑이처럼 자신도 호랑이가 되려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흉내도 내지 않고 떠난 호랑이를 뒤세우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밤길을 혼자 걸어갈 줄 안다. 누가 옆에 없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