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귀연수필가
송귀연
수필가

봄의 잉여를 솎아낸다.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새순들이 해바라기하듯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장갑 낀 손에 지긋이 힘을 준다.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여린 생명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위로 향한 꽃눈들은 햇볕에 과다 노출되어 제대로 된 결실이 어렵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채 피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애처롭다. 하지만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다.

귀농은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진 남편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엔 작은 텃밭을 꿈꾸었지만 뜻하지 않게 지인으로부터 과수원을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과수원 모퉁이에 작은 컨테이너를 앉히고 집에서 자동차로 사십 여분의 거리를 오가길 몇 달간 반복하였다. 결국 일손이 자주가야 하는 과수의 특성상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서둘러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있던 몸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 나는가 하면 갑자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했다. 도회생활에 대한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

꽃눈솎기는 꽃이 필 때 영양분 소모를 줄이는 한편, 초기생육을 좋게 하여 결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욕심을 내어 필요이상의 꽃눈을 놔두면 전체적으로 나무는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꽃눈 한 개 솎아낼 때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대신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꽃눈솎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

금을 추출할 때 연금술사들은 여러 차례 불순물을 버리고 걸러내는 제련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가치가 낮아져버린다. 도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채취한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은 걸러서 버리고 가라앉은 깨끗한 흙을 분리 숙성시킨다. 숙성된 흙을 물과 반죽하는데 꼬막밀기로 흙속의 공기를 제거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과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전부인 쓸쓸하고 황량한 그림을 그렸다. 여백이 더 많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꽉 차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남편과 나의 관계도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쳤다. 성격이 급한 남편과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내가 흰머리 희끗한 세월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서로 자신의 것은 내려놓지 않고 상대가 변하기를 고집했었다. 멀리 한곳을 보지 못한 채 마주보며 서로의 단점을 먼저 헤집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편안한 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출세며 아이들의 성공이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맸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는 하루하루다. 창가에 날아와 아침을 깨우는 새 소리며 뒤란을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며 맞은 편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의 뒷모습은 도회생활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았다.

다시 꽃눈솎기를 계속한다. 도톰한 꽃눈들이 발아래 눕는다. 남아있는 것들은 버려지는 것들로 인하여 소중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남아있는 것들로 인하여 아름답다. 꽃눈 하나씩 솎을 때마다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도 함께 솎아낸다. 욕심과 집착과 원망과 두려움들. 삶을 완성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일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다. 내 몸의 가지에도 푸른 수액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