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곤충학자 알렉산드로 류비셰프는 매일 10시간의 넉넉한 수면을 취했을 뿐 아니라 운동과 산책도 한가롭게 즐깁니다. 연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관람, 전시장 방문 등 문화 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1972년 작고할 때까지 서신 왕래를 통해 세계 각국의 학자들, 벗들과 왕성한 소통을 했습니다. 피로감을 느낄 때는 언제든 일을 중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죠.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았던 류비셰프가 자신의 분야에서 낸 성과는 놀랍습니다. 평생 학술서적 70권을 저술했습니다. 30대 이후 1년에 평균 책 1∼2권을 50년 동안 줄기차게 쓴 거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책 이외 그가 쓴 연구 논문은 무려 1만2천500 페이지에 이릅니다.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대략 100권 분량의 논문들이지요. 여기에 수천 권 소책자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곤충분류학 뿐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철학, 역사, 문학, 윤리학을 두루 섭렵하고 글을 썼습니다.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였던 신비로운 사나이. 비결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독특한 시간관리 방식에 비밀이 있습니다.

26세가 되는 어느 날 결심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시간을 꼼꼼이 기록하기로! 노트를 준비해 사용한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시간 통계노트라고 불렀습니다.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매일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계산하고 기록합니다. 연구 도중 서재에 들어온 딸과 대화하는 시간도 기록에 남깁니다.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조차도 셈합니다. 출장이 있으면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미리 부쳐 놓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쌓은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으며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했습니다. 5년 주기로 자신이 사용한 시간의 통계를 내고 분석했으니, 류비셰프는 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관리했던 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관리의 세계 챔피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간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시간 앞에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82년 인생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했습니다.

메마른 삶이 아니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복해 내편으로 만들어버린 예술의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충분한 휴식, 여유로운 문화 예술 생활, 방대한 독서, 어머어마한 저술. 사람들과 충분한 소통. 어쩌면 그는 인생 자체를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게 즐기다 간 지고의 로맨티스트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