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 투쟁 깃발 아래 똘똘 뭉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확 달라졌다’는 평가다.

한국당은 그동안 ‘웰빙정당’이라는 다소 굴욕적인 대명사로 불렸으며, 계파 갈등까지 깊어 대여 투쟁력에 큰 한계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1야당다운 야성(野性)을 보이며, 대여투쟁에 나서고 있다.

우선 한국당은 지난 25∼26일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시도를 막는 일차적 성공을 거뒀다. 비록 국회선진화법을 무시하고 ‘폭력 국회’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국당은 ‘육탄 저지’를 위한 단일대오를 유지했다. 여야 4당이 지난 23일 패스트트랙 처리시한에 합의한 직후부터 28일 현재까지 24시간 농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당의 대여투쟁 의지가 매우 뜨거워졌음을 실감케하는 일화가 있다. ‘패스트트랙 저지 사령탑’을 맡고있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6일 밤 비공개 의원총회에 숙박 농성 자원자를 구하면서 “아무도 국회에서 주무신다는 분이 없다면 저 혼자서라도 자겠습니다”라고 하자, 의원들이 앞다퉈 손을 들며 자원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 강행에 반발해 ‘단식 릴레이 농성’에 나섰다가 ‘5시간 30분의 단식’이 알려져 ‘가짜 단식’‘간헐적 단식’‘웰빙 단식’등의 비웃음을 샀던 게 불과 3개월 전의 일이다.

또 지난 26일 민주당이 국회 폭력행사 등의 혐의로 의원 18명을 고발하자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한때 고발을 감수하면서 실력 저지에 나서는 데 따른 부담을 느끼는 의원들이 적지않았을 때의 일이다. 민주당의 고발 이후 열린 의총에서 ‘원내지도부가 개별 의원의 고발을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나 원내대표는 “저도 고발당했는데 같이 죽죠. 같이 살고 같이 죽죠”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이에 원유철(5선)·신상진·정진석·주호영(이상 4선) 의원 등 중진의원들이 “고발 안 된 중진들이 앞장서자”며 의총 이후 정치개혁특위 회의장 점거의 최일선에 섰다는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스크럼을 짠 채 바닥에 드러눕고, 팔을 휘두르며 연신 ‘독재 타도’,‘헌법 수호’를 외친 것도 그동안 웰빙정당으로 지목되던 한국당의 대여투쟁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란 지적이다.

당 지도부의 대여투쟁 의지도 결연하고 단호하다. 패스트트랙 대치가 시작된 지난 24일 장인상을 당한 황교안 대표는 곧장 소속 의원 및 당협위원들에게 “조문을 오지 말고 대여투쟁 상황에 집중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상중인 지난 26일 새벽 상복 차림으로 국회를 찾아 점거 농성 중인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을 격려했고, 전날 장인상 발인 후에는 곧장 대규모 규탄대회가 열린 광화문으로 향했다.

한국당 일각에서 여야의 물리적 충돌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대여 투쟁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당 결속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대여투쟁 깃발 아래 똘똘 뭉치면서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간 해묵은 갈등이 누그러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그동안 의총 등에서 의원들이 모일 때 친한 사람들이나 계파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 전체 의원들이 같이 먹고 자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며 “이 과정에서 계파를 초월한 일종의 전우애, 동지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달라진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무엇을 얻고 잃을지는 몰라도 당내 분열이 봉합되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향후 총선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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