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한국당의 딜레마
패스트트랙, 한국당의 딜레마
  • 등록일 2019.04.25 20:00
  • 게재일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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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여야4당이 밀어붙이는 패스트트랙을 홀로 맞서 장외투쟁이란 극단적인 투쟁으로 막고 있지만 힘겹고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갑작스레 협상으로 자세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국회 밤샘농성과 사무실점거 등 초강경 대응책으로 바쁘다. 극한 대치정국이 이어지면서 재난대처 및 선제적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심의가 어려워진 것도 여야 모두에게 곤혹스런 일이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25일 국회에 제출했다. 재난대처 강화, 미세먼지 저감, 선제적 경기 대응을 위해 편성된 이번 추경안을 5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추경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무총리 시정연설 후에 기획재정위, 행정안전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환경노동위 등 12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본회의 의결 등의 처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패스트트랙 추진을 놓고 여야4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안 심사가 언제 시작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여야가 이같은 극한대치국면에 빠져들게 된 데는 여당이 패스트트랙을 놓고 협상을 제안할 때 한국당이 별 생각없이 반대한 것이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현상유지편향’이 한국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현상유지편향은 자신에게 특별한 이득이 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선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성향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환경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확실한 현재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향성은 생명과 재산이 걸린 중대 사안과 관련된 경우엔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리학자들은 원시 시대 인류가 처한 환경이 현상유지편향을 낳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원시인들에게 잠자리로 쓸 동굴을 결정하는 것과 어떤 버섯을 먹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자칫 낯선 동굴에 들어가면 맹수를 만나거나 잠자는 동안 독충에게 쏘여 죽을 수도 있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못 보던 버섯을 함부로 먹었다가는 독버섯을 먹고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원시인들이 특별한 변화나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때 기존에 해왔던 검증된 선택지만 고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옷을 고르고, 버스를 탈 때 자리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특정 정당이나 법안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생명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현상을 보여왔다. 자유한국당이 정국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당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를 일삼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충돌국면에서 보인 현상유지편향은 한국당을 곤경에 몰리게 한 요인이 됐다. 한국당 지도부가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의 움직임을 안이하게 지켜보다가 이같은 사태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판단한 민주당이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등을 놓고 민주평화당 등과 전격 합의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 등 다른 당의 협상제의에 응하지 않다가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한국당은 선거법 등 혁신법안에 대해 다른 야3당과도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고 여당을 견제하거나 여당과 좀더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실리를 챙기는 유연한 협상전략을 구사하는 게 옳았다. 어떻든 싸움만 일삼는 정치를 누가 좋아할까. 이제 정부여당의 잘못된 정책에는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되 올바른 국정운영에는 힘을 보태주는 건전한 야당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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