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을리 이발소’

김동헌 지음·아르코 펴냄
시집·7천원

김동헌 시인
김동헌 시인

“오늘 아침 막내가 보내온

휴대폰 문자 메시지

활짝 웃자 한다

그래도 웃자 한다

가지 끝 장미 한 송이 피워 올리듯

꽃처럼 활짝 웃자고 한다

하루하루 짙어가는 암을 숨긴 채

투병하고 있는 막내야

미안타 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침상 적셨던 어둠이 지나면

분주히 아침을 챙길 것이며

곤한 하루가 저물면

어제처럼 잊혀질

내 일상이 미안타”- 김동헌 시 ‘일상이 미안타’전문

김동헌 시인이 첫 시집 ‘지을리 이발소’(아르코)를 펴냈다. 2003년 ‘포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지 16년 만이다.‘연어가 돌아왔다’‘일상이 미안타’‘아버지의 바다’등 작품 68편을 담았다. 1967년 포항에서 태어난 시인은 “강과 산이 변한다는 세월 두 번 동안 채우는 삶을 살았다. 내가 쓴다고 생각했으나 되돌아보면 내 아닌 것들이 삶의 행간에 채워졌다”며 “한나절이라도 시간이 더 남았다면 비우는 인생을 위해 하늘을 보아야 하리라”고 말했다.

봉화산(烽火山)의 동남 기슭 해안의 어촌, 지을(知乙)과 대벌이를 합해 죽천(竹川)이라고 한다. 이곳 지을리는 숲과 물이 좋아 새들이 알고 많이 서식했기에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벌리는 갈대가 많은 여남천의 하구에 형성된 어촌이다. 대나무가 많은 벌에 있다고 대벌리, 라고 부른다.

김 시인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집은 주로 죽천에서 살면서 오래도록 기록한 시편들로 이뤄져 있다.

‘대벌리 기지국’에서는 사남매 키우신 기지국 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죽천횟집’에서는 “지을리에 있다는 사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라고 반문해 보기도 한다. ‘살구나무2’에서는 “대숲 울타리 살살 감싸주고 몸 비비며 살아온 사형제”의 가족사가 담겨 있다. 추억과 유년의 모습들이 시어들 사이로 새록새록 새롭게 되살아난다.

표제는 시 ‘지을리 이발소’에서 따왔는데, 벌초와 이발소 그리고 아버지가 바리깡으로 시인의 머리를 밀어준 눈물의 풍경들이 행간 가득 교차하고 있다. 이처럼 지나간 추억의 시간을 노래한 ‘지을리 이발소’ 시집에는 국화차보다 더 진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해 차영호 시인은 “김동헌 시인의 시는 시정신과 종교관, 삶의 철학이 한 탕관에 담겨 오래 달여진 진국이다. 아니 더 졸이고 졸여 빚은 환(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어 곰삭은 맛깔을 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얼굴 붉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시는 그만큼 안으로 데워져 따뜻하다. 늘 깊은 사유 끝에 ‘차창에 비친 내 모습/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의자가 되어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매 시편마다 ‘살팍살팍 물기를 털어내며’ 새벽길을 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선연하다”고 평했다.

‘지을리 이발소’해설을 쓴 최라라 시인은 “여하튼 김동헌 시인은 잘 웃는 시인이다. 웃으면서 아플 줄 아는 사람이고 웃으면서 고통을 감출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미소를 잘 읽어준다면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미소를 간과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 한 세상을 누군가는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을리 이발소’출판기념회는 27일 오후 5시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 갤러리에서 열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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