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10년전 프랑스 명문대학 에꼴폴리텍(Ecole Polytechnique)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에꼴폴리텍은 푸리어, 라그랑제, 포아송 등 수학, 통계, 공학 등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나폴레옹이 만든 대학이며 프랑스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

당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대학이 석박사 연계과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에꼴폴리텍 입학자는 석사까지 마치는 학석사 연계과정을 대부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제도는 프랑스의 명문대학 그랑제꼴(Grandes Ecoles)에서 대부분 택하고 있는데, 이는 학문,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은 석사까지 마칠 수 있어야 그 분야를 어느정도 마스터 하게 된다는 철학에 근거한다.

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대학들과 연계해 ‘반도체 계약학과’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KAIST) 등과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학생장학금 학과 운영비 반도체 실습에 필요한 고가 기자재 등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전원 해당 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다.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부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의지에 맞춰 추진하는 사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발간한 ‘산업기술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도체업계 전문인력은 1천500여 명이 부족한데 이는 디스플레이업계에 부족한 전문인력보다 5배 이상 많은 숫자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의 에꼴폴리텍처럼 최근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와 추진 중인 ‘반도체 계약학과를 5년짜리 학·석사 연계과정을 통해 메모리는 물론, 비메모리 분야까지 한꺼번에 육성한다는 구상을 밝혔다는 점이다. 선발인원은 1년에 최소 50명.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에 학·석사 연계과정(3년+2년)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등 첨단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SK하이닉스와 카이스트가 2년 후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본격 운영한다고 가정할 경우 2025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때가 바로 중국이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한 첫 해가 된다. 타이밍으로 보았을 때 시기적절한 시작이며 반도체 계약학과는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차이는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등에도 카이스트와 비슷한 내용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관련 규정을 충족하고 인·허가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부가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점육성 산업’으로 선정한 만큼 시범적인 ‘SK하이닉스-KAIST 반도체 계약학과’ 출범은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 확정안은 정부가 이달 중 발표 예정인 비메모리 산업 육성방안에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이날 반도체 계약학과 관련 내용을 내놓을 방침이다. 10년 전 에꼴폴리텍을 방문했을 때 방문단에 함께 했던 당시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도 학석사 연계과정의 5년제로 운영하겠다는 신선한 뉴스를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제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지금 진행중인 반도체게약학과에 우리 지역의 포스텍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황스럽다. 포스텍은 이러한 유수한 대학들과 공학분야에서 어깨를 겨루는 최고의 대학으로 당연히 이러한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학석사 연계과정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노하우를 가진 대학으로 이러한 제도 정착에 선두를 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포스텍이 학석사 연계과정의 선두주자로 국내 반도체산업 육성에 앞장서길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