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천재 화가 이중섭에게는 절친한 벗 구상준이 있었습니다. 구상 시인으로 알려진 유명한 분이지요. 한국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부산에서 홀로 작품을 그리고 있던 무명의 이중섭을 자신의 식객으로 대구로 모시고 올라와 지극한 정성을 다 합니다. 구상은 당시 영남일보 주필로 활동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힘을 다해 이중섭이 오로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친구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서울과 대구의 전시회를 진두 지휘하면서 무리한 탓이었을까요? 구상은 이중섭의 대구 전시회가 끝나자 쓰러집니다. 폐결핵 판정을 받고 폐 절단 수술을 받습니다. ‘누구누구는 꼭 문병을 올 거야. 중섭이야 제일 먼저 달려오겠지.’

그런데 이상합니다. 다녀갈 만한 사람들은 모두 문병을 왔는데 가장 친한 벗인 중섭은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구상 시인은 마음이 상하기 시작합니다. ‘중섭이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회복 중이라 불편한 몸에 낙심한 마음이 겹쳐 구상은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며칠 후 마침내 중섭이 병실 문을 열고 나타납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나는 다른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만은…” 친구의 원망에 이중섭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입니다. 부시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구상에게 내밉니다. “이게 뭔가?” “실은 이것 때문에 이렇게 늦었네. 내 정성일세.” 천도 복숭아 그림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 장수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일어나게.” 과일 하나 사 올 수 없었던 가난한 이중섭이 과일 대신 그림을 그려 온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 잡습니다.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 복숭아를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 합니다. 시인과 화가의 우정을 생각하니 함석헌의 시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려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내가 바로 누군가에게 중섭이 되는 날을 꿈꾸어 봅니다. 나는 과연 그 한 사람을 가졌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누군가의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삶이기를 생각하는 그대의 멋진 모습에 반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