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화는 진화한다. 이때 진화란 발전이 아니라 전개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물론은 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물질적 조건이라고 말한다.

△물질이 사고를 결정한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로부터 왔는데, 헤겔이 쓴 정확한 단어는 ‘발전’이 아니라 ‘전개’였다.

발전과 전개는 다르다. 발전이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나아간다는 말이지만 전개한다는 말에는 그런 목표가 없다.

역사가 전개된다는 의미는 더 나은 쪽이나 더 못한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펼쳐진다는 말이다.

인류의 문화는 진화한다. 이때 진화라는 말도 하나의 종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방향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해 간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지구상 생명체의 진화도 어느 방향성을 따라 발전되거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갈래의 무작위성의 결과다. 그 선택의 방향이 좋은지, 나쁜지 말할 수는 없다. 좋다, 나쁘다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교 우위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반복될 수 없으므로 그 둘을 비교할 수는 없다. 패션의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류의 문화가 진화한다는 것은 변화하며 변화의 우열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는 방향으로 펼쳐진다.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유물론은 물질이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물질은 인간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변혁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질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 이야기를 해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호세 사라마고(Jos<00E9> de Sousa Saramago·1922∼2010)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폭로한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를 썼다. 이 소설은 사람이 집단적으로 눈이 멀게 되는 전염병에 걸린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법과 도덕과 윤리가 얼마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쉽게 와해될 수 있는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비겁하고 추악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의 눈이 멀면 더럽고 깨끗하다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고 더불어 잘 생겼다거나 예쁘다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TV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백화점이나 아울렛과 같은 패션시장은 애당초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심지어 동물원까지 텅 비어 버릴 것이다. 눈이라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 속에서 예술이 만들어지고, 아름다움 에 대한 관념이 생긴다. 아무리 고결하고 고상하고 싶어도 물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유와 정신, 영혼까지 더러운 진창길을 헤매야 한다. 물질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테리니 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 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To Treno Fevgi Stis Okto)’의 가사 일부다. 조수미의 노래로 우리에게 친근한 이 곡은 음악의 거장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eodorakis·1925∼)가 작곡했다. 1960년대 그리스의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싸우던 한 청년 레지스탕스와 연인이 겪은 이별의 아픔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 질린 여성은 연인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카타리니로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독재 치하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놔두고 혼자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떠날 수 없었던 청년은, 그녀 앞에 나타나지도 못한 채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만 숨어서 지켜볼 뿐이다.

근대적 탈 것은 전근대적인 탈 것과 전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이다. 마차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기차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차에 탄 사람의 마음이야 어떻든 기차는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시간까지 달려가기 바쁘다.

기차는 인간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떠나는 기차를 세울 수도 없으며, 기차를 따라 잡을만큼 빠른 교통수단도 없다. 연인은 떠나가고 홀로 남은 남성은 그 이별을 중지시킬 방법이 없다. 실제로 기차의 기적은 시끄럽다. 기차를 타기만 하면 이별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사람과 사람을 떼어놓고 마는 기차의 속성이 그 요란한 소리를 슬프다고 느끼게 만든다. 기차의 기적이 슬픈 것이 아니라 기차의 속성으로 인해 기적은 슬픈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경험의 양과 속도

물질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사회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며 발전했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기계의 발전에 힘입었지만 중세시대와 같이 신을 중시했다면 이런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한다거나, 인간이 신을 흉내낸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계에 대한 인식이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기계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인간은 평균 시속 10㎞로 달릴 수 있고, 걸으면 한 시간에 4㎞ 가량 갈 수 있다. 인간탄환이라 불리는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세운 100m 세계신기록은 9.58초다. 이 속도로 사람은 10분도 달릴 수 없지만, 1시간을 달린다고 해봤자 고작 38㎞를 가는 것이 전부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는 음속으로 달리는 열차 개발계획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바퀴 없는 열차가 인간의 음성보다 더 빨리 달리는 시대가 지금 우리 눈앞에 열리고 있다.

1850년대 사람이 이동하는 평균속도는 시속 6km였고, 이를 토대로 계산한다면 한 사람이 평생 이동하는 거리는 11만㎞였다. 그런데 2050년이 되면 운송수단의 평균속도는 시속 337㎞에 이를 것이고, 한 인간이 평생 이동하는 거리는 1천100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운송수단의 속도가 50배 늘어나는 동안 인간의 능력은 100배 이상 상승하게 된다. 인간은 더 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능력은 거기에 비례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exponential)인 수준으로 높아진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평균이동속도가 빨라진 것은 경험의 폭이나 경험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이전의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들의 경험은 그 마을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고,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이상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즉 근대이전 인간의 경험과 지식이 마을과 같은 크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공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탈 것의 속도는 빨라져 자신이 태어난 나라는 물론 마음만 먹으면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단시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경험과 지식의 크기는 지구라는 수준을 넘어서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다. 우주는 터무니없이 넓고 거기에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이제 우주 만큼의 넓이로 확장될 것이다.

정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인간을 지배한다. 과학기술은 물질을 만듦으로써 정신을 변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