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지금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먹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중에서)의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필자의 경험상 이 말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그나마 배운 것에 대한 혜택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 교육은 변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변하자고 수십 년째 떠들고 있지만 놀랍게도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자유학기(년)제가 생겼고, 수업도 학생활동 중심 수업으로 많이 바뀌었고, 제일 중요한 평가에서도 과정중심 평가가 도입되는 등 교육전반에 걸쳐 변화가 있다고 말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겉모습만 보면 바뀐 것도 같다. 없던 것들이 많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교육계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변화라는 것이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계의 혼돈이 가중 되는 이유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교육이 정치의 하수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교육 정책이다. 혹 대통령의 정당이 바뀔 때는 전 정부의 많은 교육정책들은 패대기쳐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혀 낯선 정책들이 자리 한다. 낯섦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하고, 그 혼란을 덮기 위한 억지 교육정책들이 봇물 터진 격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수단 좋은 교육 정치꾼들은 여론 수치를 이용하여 혼란을 변화와 역동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업적으로 홍보하느라 바쁘다. 그러다가 교육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것을 전(前) 정부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러면 친정부 언론들은 갖은 방법으로 전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사건을 찾아내어 공론화시킨다. 상황이 이즈음 되면 처음에 제기되었던 교육 문제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교육계는 정치 싸움판이 된다. 이런 교육에 무슨 희망이,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교육이 죽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비록 죽은 교육이지만, 교육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이고, 학생들이 그린 꿈속에서 인류가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꿈을 빼앗아버린 정치는 학생들의 꿈도 삭제해버렸다. 학생들의 꿈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미래가 없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런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미래 사회 역군인 학생들이 다시 행복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즐겁게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하루 빨리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교육정책이 바뀌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 전에 교사들부터 교육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는 “든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이 많은 든 사람, 난 사람은 재주가 있어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사람, 된 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됨됨이가 된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혹 독자 여러분은 본인이나 본인의 자녀가 이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아마도 들고 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 교육 또한 학생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든 교육과 난 교육만 해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이 참담(慘憺)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럼 우리는 계속 희망이 부재한 교육 암흑기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누구도 이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치로부터의 교육 독립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할 죽은 교육 내용을 과감히 버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학생들이 스스로 찾고 내면화할 수 있는 ‘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