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뺀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에 합의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국회 보이콧을 포함하는 초강력 투쟁을 작심하고 있어 정국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에 올라섰다.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아전인수 격의 이기적 셈법만을 내놓고 무한충돌을 양산하는 정권과 여당의 무책임한 적대정치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한 내용은 지역구를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되 득표율을 50%만 연동시키는 방식에 합의했다. 공수처법은 판·검사, 경찰 고위급에 대한 기소권만을 갖는 것으로 절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여야4당의 선거제-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정의당도 같은 시간 의원총회를 열어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하지만 내분사태로 태생적 한계마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의원총회는 아수라장을 연출하며 진통을 거듭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강행으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자유한국당은 다른 당들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합의에 망연자실이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렸다”고 선언할 정도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제 개혁은 정치권이나 정치학자들 사이에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승자독식형인 소선거구 중심의 현행 선거제는 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 괴리가 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표가 많아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룰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야 제 정당 간 원만한 합의가 아닌 비정상적 수단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합의는 국회의 전통과 민주주의 대원칙을 벗어나는 심각한 일탈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야흐로 정치력이 완전히 실종된 ‘정치암흑기’에 접어들고 있는 강퍅한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오롯이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포용과 여유로 야당을 품어내는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다. 야당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는 등의 독선적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반발하는 야당에는 그저 하염없이 독설만 퍼붓는다. 민주당은 국가의 미래와 민생은 안중에 없이 무참히 뿜어대는 증오와 혐오의 독기가 불러올 업보가 정말 두렵지 않은가. 민주당은 부디 자신들이 야당이던 시절에 정치 파행의 책임을 당시 여당에 무한히 전가하며 고래고래 외쳐대던 장면들을 낱낱이 반추하라. 여야 정치권의 참담한 정치력 고갈을 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