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강도 부동산 대책 ‘불똥’
지역 집값 폭락에 미분양 속출
포항 매매가격 도내 최대 하락
경주 미분양 전국 시군구 ‘2위’
지방 주택부터 처분 경향 반영
공급 과잉 해소가 유일한 대안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얼어붙은 적이 없습니다.”

포항시 남구 이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52·여)는 최근 2년 새 업소를 찾는 손님들이 부쩍 줄었다고 했다.

정부의 강도높은 부동산 규제책에 지진공포까지 겹치면서 포항지역에서 아파트를 사고 팔려는 사람들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장에 나와있는 매물도 매매가를 1천만원 이상 낮추지 않으면 주인을 만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기존에 살고 있던 집이 팔리지 않으니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도 대거 미분양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끝없이 치솟던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잇따라 쏟아낸 고강도 부동산 규제의 불똥이 튀면서 포항,경주 등 지역은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억제책의 기본 목표이던 ‘수도권 집값 안정화’에는 성공했으나 상대적으로 안정화돼 있던 대구·경북 등 지방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집값이 폭락하고, 신규아파트 미분양 현상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이사업체 등 파장은 물론 거래제한으로 지자체가 거둬야 할 지방세수도 급감하고 있어 후유증이 다방면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입주 물량이 계속 쌓일 경우 지역 부동산시장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경북의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97.3으로 심각한 수준에 빠져있다. 한국감정원은 2017년 11월을 기준(100)으로 매달 전국의 지역별 주택 매매가격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97.3은 기준점에 비해 2.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반면 서울의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106.2로 최고점을 찍었던 2018년 11월(106.8)보다 0.6포인트 떨어지긴 했지만 하락세가 뚜렷한 경북지역과는 대비를 이뤘다.

경북지역 시·군별로 살펴보면 포항시가 94.2로 하락폭이 가장 깊다. 정부가 잇따라 쏟아낸 부동산 대책에 지진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포항지역의 집값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구미시 95.4, 경주시 95.5, 안동시 96.7, 김천시 97.8 등 나머지 도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존 주택의 가격 하락은 신규 입주물량으로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 5만9천614가구 중 경북지역의 물량은 8천385가구로 14.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경남(1만4천781가구)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미분양 주택이 거의 없는 서울(50가구)이나 광주(49가구)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경북지역 시·군에서는 경주시가 1천997가구로 가장 많았다. 경주시는 전국 시·군·구 중 경남 창원(6천773가구)에 이어 미분양 주택 2위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3월 말 기준 경주지역 미분양 아파트는 용강동 ‘두산위브트레지움’이 1천204가구 중 1천77가구, 현곡면 ‘경주 센트럴푸르지오’가 1천671가구 중 429가구 등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미분양 현상이 해소될 때까지 신규 아파트 사업승인을 제한키로 하는 강력한 규제책을 지난 3월 꺼내들었다. 지난 3월 말 기준 인구 25만6천357명인 경주지역의 주택보급률은 125%로 이미 수요 대비 공급이 초과된 상태다. 경주시는 주택경기가 활성화될 때까지 신규 아파트 건립과 기반시설이 부족한 지역의 개별택지개발은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제한할 방침이다.

같은달 포항시의 미분양 주택은 1천373가구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말 기준 두호동 ‘두호 SK VIEW 푸르지오’가 657가구 중 299가구, 장성동 ‘장성푸르지오’가 1천500가구 중 284가구, 우현동 ‘우현 우방아이유쉘 센트럴’이 478가구 중 140가구 등의 순으로 분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타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김천시 1천250가구, 구미시 911가구, 영천시 879가구, 경산시 673가구, 안동시 494가구 등으로 공급 과잉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인 대구지역도 738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며 전국 최대규모 군단위 지자체로 성장한 달성군이 621가구로 미분양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폭발적인 성장세의 이면에 주택 과잉공급으로 인한 미분양 현상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2017년 ‘8·2 부동산 대책’, 2018년 ‘9·13 부동산 대책’등 정부가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고강도 부동산 정책이 지방 주택시장을 냉각시켰다고 보고 있다.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에 주택 여러채를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지방 주택을 처분하려는 경향이 많아졌다”며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서 지방에는 주택 매도자가 늘어난 반면, 매수자는 부족해 집값이 하락했고 이는 신규 물량에도 영향을 끼치며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부동산전문가인 안병국 전 포항시의원은 “현재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10%가 넘는 상황이라 주택 과잉공급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대안을 찾기 힘들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미분양상태인 주택이 모두 분양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주택 시행사에 대한 금리조정 시행과 지방정부 차원의 신규아파트 인허가제한 조치 등을 통해 신규물량 공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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