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쁘고 분주한 삶에 서서히 지쳐가는 봄날입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돌보아야 할 사람도 많습니다. 참여해야 할 모임도 많고 내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단체도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들은 산더미 같고 써야할 글들은 끝도 없습니다. 누구나 이런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삶의 현 주소가 아닐까요?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 이후 삶이 너무도 바빠졌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겐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바빠져서 요즘은 세 시간씩 기도해도 부족하다.” E.M 바운즈의 책에서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잘못 읽은 줄 알고 눈을 잠시 깜빡인 후 다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세 시간 기도하다가 바빠서 한 시간 기도한다는 것을 잘못 쓰거나 번역한 것으로 착각했던 거죠.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 삶이 바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나의 개입과 판단, 에너지를 써야 일이 이뤄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지금 당장 죽으면 세상도 바로 멈추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세상은 내가 사라져도 아주 잘 굴러갈 겁니다. 삶이 바쁜 이유는 우리 착각 때문입니다. “나 없이는 안돼.” 라는 의도적 착각에 스스로가 빠져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지요. 내 존재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거기서 안정감과 인정을 얻으려는 욕구를 해소하려는 본능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생의 본질과 속성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도 시간을 세 배 늘림으로써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과업 중 무엇이 중요한 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걸러내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진정 중요한 일에만 삶의 우선 순위를 둘 수 있는 분별력 함양에 시간을 쏟은 거지요.

삶이 바쁠수록 더 깊은 자발적 고독으로 나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곳에서 자신과의 내밀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핵심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에 따른 절제된 행동으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나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와 전략으로 나의 시간을 뺏으려 달려드는 온갖 힘에 저항할 능력을 잃게 마련입니다.

저와 그대 앞에 놓인 남은 2019년, 그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2020년.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삶의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 시간이시기를, 그리하여 생애 최고의 시간들을 보내실 그대에게 박수를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