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지난해 말 퇴임을 앞두고 국회예결위에 출석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김동연은 “현재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경제의 위기라기보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경제마저 정치의 흥정대상이 돼버린 ‘경제의 정치화’가 끼치는 해악에 대한 장관의 비명으로 들렸다. 사실 이 나라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 등 사람 사는 모든 일이 정치적 결정에 맡겨져 있다.

‘좌파 독재’라는 용어가 정치권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통령이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기어이 임명하자 자유한국당이 길거리로 나섰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한결같이 좌파 독재의 길을 걸었다”며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천국을 만들어왔다”고 공격했다.

황 대표는 이어 “힘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잡아넣고, 아무리 큰 병에 시달려도 끝끝내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며 “‘친문(친문재인) 무죄, 반문(반문재인) 유죄’가 이 정권이 말하는 민주주의냐”고 성토했다. 황 대표는 나아가 “개성공단에는 목을 매면서 우리 공단을 살린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행 특급열차’를 타고 망하는 길로 달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목표로 일찌감치 모종의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한 모습이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을 필두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권혁기 전 춘추관장,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등의 총선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 도종환 전 문광부 장관 등도 당에 복귀했고,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은 차기 민주연구원장으로 내정됐다.

잇단 인사 검증 실패로 구설수에 오른 조국 민정수석의 부산 출마 여부를 놓고 입방아가 시끄럽다. 이낙연 국무총리 차출설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출격 이야기도 나온다. 그만큼 민심이반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위기감이 크다는 의미도 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중은 마뜩지 못하다. 도대체 도탄에 빠진 민생, 지독한 불경기의 늪에서 죽어가는 영세상인들의 생사는 어쩌라고 권력 놀음, 총선 체스판만 벌이는가 싶은 것이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40대 취업자 수는 끝없는 추락 중이다. 올 3월 4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6만8천 명 줄었다. 지난 2월 12만8천 명 감소한 것보다 더 많다. 30대 취업자도 8만2천 명으로 감소했다. 체감실업률을 보면 정부의 재정 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은 실패한 게 분명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감각은 마비 상태에 빠졌다. ‘경제실패’ 비판을 귀 기울여 듣는 위정자들조차 이젠 없다. 이미 영세서민들의 연옥이 돼버린 뒷골목의 불황을 개선하기 위해 굿판이든 뭐든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성(民聲)을 제대로 알아듣는 모습도 없다. 일 안 하고 놀면서 뒷주머니 열어놓고 있으면 ‘복지’의 이름으로 먹고살게 해주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는 항간의 비아냥이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민주노총 등 과격 좌파 운동권의 위세에 무력화되는 공권력을 상징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가 한껏 깊어지고 있는 나라에 희망이 남아날 개연성은 없다. 이런 판에 1년 가까이 남은 총선에서의 240석 대승을 장담하며 팔 걷어붙이고 나선 집권당의 행태는 온당한 것일까. 이렇게 총선 블랙홀, 판도라의 상자부터 무책임하게 열어젖혀도 괜찮은 것일까. 머지않아 펼쳐질 정치권의 포퓰리즘 선심 잔치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