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은재 25주기
무은재 25주기
  • 등록일 2019.04.18 19:00
  • 게재일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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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포스텍 김승환 대학원장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금년 4월 30일이 무은재 김호길 포스텍 초대총장의 25주기이니까 특별행사로 명예교수님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그제서야 무심하게도 금년이 무은재 25주기라는 걸 깨달았다. 1994년 그날은 토요일로 기억된다. 동료교수들과 시내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지역TV 방송에서 그의 서거를 알리는 화면이 나왔고 식사를 하던 교수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부근 병원에 이송된 그는 포스텍 총장 6년 동안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뒤로한채 그렇게 떠났다. 금년 1월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자를 기리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한국 최초의 가속기 학자인 고(故) 김호길 포스텍 전 총장 등 16명을 신규 지정했다고 발표하였다. 과학기술유공자는 2015년 제정된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으로 2017년 초대 유공자 32명이 지정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과학기술유공자 제도는 일반 국민이 존경할 만한 우수한 업적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해 명예와 긍지를 높이고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사회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무은재는 193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하였으며 경상북도 영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는 1952년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면서 양자역학과 전자기학을 공부하면서 이론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196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장학생으로 영국 버밍엄 대학교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64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싸이클로트론(cyclotron) 분야의 연구를 병행하였다. 그는 이후 1964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UC버클리의 로렌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1966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물리학과와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재미한국 과학기술자협회 창설 및 회장을 역임했다. 1983년 한국의 과학발전과 후진양성을 위해 영구 귀국했으며 당시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초청으로 경상남도 진주에 위치한 연암공전 초대 학장직을 맡았고, 이후 공대 신설을 추진하던 포항제철과 인연을 맺으며 1985년 포항공과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선임되었다. 1985년 8월부터 1994년 4월까지 포항공과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연구 중심의 교육을 통해 기술 입국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포스텍 설립과 발전을 이끌었으며, 순수 국내 기술로 범국가적 연구시설인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건설을 주도하였다.

그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 위치한 포항공대가 성공하는 지름길은 “다른 대학이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것이 신념이었고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총장수락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1994년 체육대회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추진했던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또 필자가 맡고 있었던 최고경영자과정의 특강을 한 주 앞두고 떠나셨기에 그 아쉬움과 슬픔이 두고두고 흐른다. 무은재란 중국 사회과학원의 신관결 박사가 국제 퇴계학상 수상을 위해 1989년 내한하여, 김호길 박사에게 지어준 것으로 그가 호방한 성품뿐만 아니라 자연, 인문과학 등 광범위한 학문과 지식을 갖추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포항의 포스텍은 무은재 김호길 초대총장과 박태준 포스텍 명예이사장 두 분의 작품이라는 건 누구든 잘 아는 사실이다. 무은재 25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업적에 존경을 표하며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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