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치 마사유키(28)씨는 취미로 권투를 배우고 있습니다. 링에 오르면 오를 수록 권투가 신나고 재밌어 집니다. 체육관에서 깜짝 제안이 옵니다. “이봐 고구치씨, 혹시 진짜 시합에 한 번 나가보지 않겠어요?”

챔피언 은퇴 경기의 오프닝 게임이랍니다. TV 중계까지 잡혀있다지요. 결전의 날이 밝습니다. 야심차게 링에 오른 고구치 마사유키. 상대방을 거세게 몰아 부칩니다. 가볍게 풋웍을 하며 링을 빙글빙글 돕니다. 원투 스트레이트. 잽, 잽…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땡 땡 땡…” 시합 중지를 알리는 공이 계속 울립니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합니다. 고구치 마사유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상대방의 라이트 훅 한방에 고구치 머리에서 가발이 링 위에 떨어진 겁니다. 세상에나!

멀쩡한 선수가 갑자기 대머리가 되는 해프닝에 관중들과 시청자들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심판은 반칙패를 선언합니다. 복싱 규정에 이런 게 있거든요. “선수는 슈즈와 트렁크, 낭심 보호대 외에는 어떤 물건도 착용해서는 안된다.”

두 세 사람이 잡아당겨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가발이었기에 설마 시합에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 지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정작 큰 문제는 다음 날 일어납니다. 부업을 엄격하게 금지해 온 회사에서 고구치의 복싱을 부업으로 판단, 즉시 해고합니다. TV 중계로 온 세상에 창피를 당하고 직장까지 날려먹은 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건이 일본 전역에 퍼져 나가자 눈을 동그랗게 뜬 회사들이 있습니다. 가발 회사, 발모제 회사, 두피관리 업체 광고 담당자들이지요. 그들이 동시에 고구치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광고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 인생 역전. 막대한 광고 수입을 올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복싱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던 거죠. 이후 고구치는 벌이는 시합마다 연전 연승합니다.

우리 삶은 때로 치욕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결핍으로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넘사벽처럼 보이는 한계가 우리를 낙담케 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이 말을 기억하시지요. “이봐 채금자(책임자). (해 보기는) 해 봤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집념과 열정으로 지금 바로 내 앞에 주어진 이 순간의 일에만 전념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태도로 하루 하루 충실히 살아가면 내일 우리 앞에 어떤 선물이 주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