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짧고 소년은 금방 늙어진다고 한다. 서울에 바야흐로 봄이 미쳐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졌다. 목련은 좀더 일찍 피었다 사그러들 지경이고 산수유도 일찍 왔다 다녀갔다.

올봄은 그래도 어렵게 왔다 허무하게 간다. 며칠 날씨가 좋지 않아 비 왔다 추웠다 오늘에야 활짝 갰다. 학생들에게 이번 비에는 벚꽃이 지지 않겠지만 한 번 더 비가 오면 그때는 아름다운 벚꽃도 다 져버릴 것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세월호 참사 일을 소식으로 접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날 나는 관악산을 홀로 오르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은 게 계속되다 보니 어떻게든 회복해 보겠다고 사람 없는 한적한 숲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이미 텔레비전 뉴스를 보지 않게 된 후였다. 전날 무슨 배가 뒤집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었지만 미디어를 끊으면 세상은 고요한 법, 나는 산속 깊은 곳 꽃나무 잎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곧 비극의 크기와 깊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은 배가 뒤집히고 구조를 못한 무능의 소치려니, 경제와 이익에 눈 먼 사람들이 안전을 소홀히 한 까닭이려니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자디잔 사람들은 국가나 정부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내놓기 꺼려한다. 그런 큰 존재에 대한 믿음이 깨어져 버리면 삶을 어디에 어떻게 의탁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마, 나라가, 위정자들이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모든 막연한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때 분명히 경험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공식 매체들 이면의 소식들은 참사가 어떤 계략이나 음모에 의해 시도된 것일지 모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가는, 정부는, 그리고 이 기구를 움직이는 어떤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난 1980년에는 군부 인사들이 시민을 상대로 살육전을 벌였는데, 2014년에는 누가 학생들과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슨 일을 벌인 걸까.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나는 많은 것을 알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바뀐 지금도 우리는 많이 알면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고 바뀌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다.

참사 이후 세월호는 두 번 바다 위로 떠올랐다. 한 번은 대선 때, 또 한 번은 지자체 선거 때. 이제 또 언제 세월호는 떠오르려나. 바꿔쳐졌다는 CCTV의 ‘진실’은 언제 다시 무대 위의‘연극’을 펼치려나.

김어준 씨, 주진우 씨, 뭐하고 계시는지요? 이상호 기자님, 더 힘을 내주세요. 아직은 봄은 봄이라도 추운 봄이랍니다. 나도 이 추위를 잊지 말아야겠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