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다드 오일 중역 컨더넬스는 직원들과 고전을 연구하던 중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1-3)”라는 대목을 만납니다. 한 직원이 질문하지요. “역청(pitch)이라는 것은 원유를 증류하고 남은 찌꺼기 아닌가요?” 컨더넬스는 전율합니다. 인근에 틀림없이 유전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즉각 지질학자를 이집트로 급파합니다. 예상은 적중하지요. 거대한 유전을 발견합니다.

갈대는 모진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풀입니다. 강변이나 호수변에 많이 자라지요.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는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갈대숲은 단연 순천만입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15만평이었던 순천만 갈대숲은 현재 70만평으로 번식해 장관을 이룹니다.

갈대는 예로부터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뿌리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해서 캐가는 사람도 있고,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약품의 주요 성분이 갈대입니다. 추출물로 골대사 질환에 혁신적인 의약품을 만듭니다.

순천만 갈대 숲이 번성하자 생태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민물도요새가 떼를 지어 비행을 하고,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 가족들이 개펄에 앉아 쉽니다.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도 나타나 생태학자들을 흥분시킵니다. 고니는 여덟 마리나 서식하고 저어새는 네 마리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철새와 텃새 400종 중 절반을 만날 수 있는 새들의 안식처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 갈대는 /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제 평생 더러운 물을 빨아들여 생명력 넘치는 맑은 물로 토해내는 일을 반복하는 삶. 뿌리까지 고스란히 항암제로 쓰임 받는 삶. 온갖 생명들의 품이 되어주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숲. 인간들의 뼈까지 속속들이 챙겨주는 골다공증 치료제로 짓이겨져 녹아지는 갈대의 운명. 갈대는 알고 있는 거지요. 자신의 삶과 존재 그 자체가 눈물로 채워지지 않으면 주변을 맑게 할 수도, 누군가를 치료할 수도, 생명을 품는 숲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삶이 고단하고 조용한 울음으로 흔들리는 것은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