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 례

그때 우리집 전재산은

잘 닦은 놋대야와

아버지의 검은 구두 한 켤레

군복을 염색해 입은

청년이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와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순경이 다그쳤다

- 이 집이지?

- 바로 여기서 훔쳤지?

그의 짙은 검은 눈썹 같은 어둠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저문 내 저녁 문 앞에

몰려와 다그친다

나는 밝은 날 다 흘려 버리고

막다른 골목 같은 저녁이

막막해서

그저 네 네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나는

검은 잠바 입고 온 그, 저녁에게

빛나는 놋대야와 검은 구두 한 켤레를

내어줄 수나 있는 것인지

시인은 지난 시절 자기 집에 들어와 놋대야와 아버지의 구두를 훔친 도둑이 잡혀온 일화를 들려주면서 자기 자신에게 혹은 우리에게 묻는다. 일생 동안 우리는 잃은 사람에 드는지 아니면 뭔가를 훔친 사람에 드는지를. 생각해보면 잃어버리기도 했고 또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은촛대가 아니어도 우리는 무언가를 훔친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깊은 사념에 들게하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