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춘풍추상(春風秋霜)’
청와대의 ‘춘풍추상(春風秋霜)’
  • 등록일 2019.04.15 18:58
  • 게재일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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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청와대의 모든 비서관실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춘풍추상’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의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에서 나온 말로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지키는 데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이 액자를 선물한 이유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청와대 공직자들이 업무수행에 있어서 그러한 자세를 가지자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주문한 ‘춘풍추상’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는 물론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한 후 다시 월세로 살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낙마하게 되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는 자녀유학자금 문제, 인턴채용 비리, 연구비 부정사용, 부동산 투기 등이 문제되어 역시 낙마하게 되었다. 게다가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는 판사는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식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문제되자 “남편이 한 일로서 나는 몰랐으며, 재판관에 임명되면 매각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본인과 남편 명의의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義)가 아니라 이(利)’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공직에 취임한다고 해서 ‘춘풍추상’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저질 발언과 막말 욕설을 일삼았던 사실이 드러나자 청문회를 통과할 목적으로 “깊이 반성한다.…해당자에게 사과한다.…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이 지경이니 강단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삼천리다. 야당이 자질부족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전형적인 코드정치이자 불통정치의 사례이다.

이처럼 청와대는 법적·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된 사람들을 장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하여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놓고도 인사검증에 실패한 수석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현 정부에서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들은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다주택은 기본조건’이라는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을 청와대는 왜 계속 외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대통령은 ‘춘풍추상’이라는 액자를 비서관실에 장식용으로 선물하였다는 말인가? 청와대 사람들은 ‘춘풍추상’을 걸어놓고 행동은 거꾸로 ‘대인추상(待人秋霜) 지기춘풍(持己春風)’, 즉 요즈음 표현으로 말한다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청와대의 이율배반이 반복되고 있으니 지난 정부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역대급’이다.

‘대통령의 입’이라고 하는 청와대의 김의겸 전 대변인은 고가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결국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 시절 “재개발은 가난한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는데, 청와대에 들어와 권력을 가지면서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다. 그는 야당이 “당신의 흑석지구 건물구입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는 착한 재개발이었기 때문이었는가?”라는 비난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의 행위는 ‘내가 하면 정상 매입’이고 ‘남이 하면 부동산 투기’라는 ‘내로남불’의 전형이었다.

보통사람들도 언행이 불일치되면 신뢰를 잃게 되는데 하물며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내로남불’이 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지도자에게 특히 요구되는 덕목은 바로 법적·도덕적 정당성의 토대가 되는‘춘풍추상에 대한 언행일치(言行一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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