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낙태죄와 관련한 현행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1953년 제정된 낙태죄가 66년 만에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되었다. 오랫동안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만큼, 헌재 판결 이후에도 여파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게 아니어도 사사건건 패를 갈라 반목과 대립을 지속해온 이 나라에 낙태죄 논란까지 폭발하여 분열양상이 극한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헌재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이 헌법불합치 의견,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 단순위헌,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위헌 의견 재판관들은 자기낙태죄가 헤어진 연인·남편 등의 복수나 분쟁에서 압박수단으로 악용된 점, 실제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돼 처벌된 사례가 드문 점 등을 언급하며 “폐기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허용은 결국 ‘편의’에 따른 생명 박탈권을 창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심지어 “시류·사조(思潮)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정치적 판단’인 이번 결정으로 불변의 신념을 믿는 종교계 등이 입장을 180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간 생명존중’을 다투는 특성 때문에도 이 문제는 앞으로도 첨예한 대립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이 나온 뒤에도 “낙태를 하면 아기가 죽는다는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성토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헌재의 결정이 인간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스스로 해치고 있다는 반박 논리도 나오는 판이다. 후속 조치의 책임이 정치권 영역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국회와 언론은 이 문제가 자칫 살벌한 정쟁(政爭)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슬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 존중’과 ‘태아살해 범죄’ 견해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안팎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난해한 모순이 참 얄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