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자시인
홍인자 시인

바다를 향해 넓은 창이 난 우리 집은 일출의 장관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나는 일출 시간에 맞추어 일찍 기상했다. 일출은 웅장한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어두운 빛이 점점 소멸되고 수평선 위로 붉은 빛이 시나브로 번지면서 일출이 시작된다. 분도기 모양을 하며 떠오르기 시작한 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둥근 모양이 된다. 마치 바다가 해를 밀어 올리기라도 하듯 둥근 해는 일시에 하늘로 솟아오른다. 선명하게 떠오른 해는 그 환한 빛으로 물살을 은빛으로 빛나게 한다.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이다. 매번 일출을 보면서 이 집에 이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오랜 가수의 노래를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듣는다. 아침에 어울리는 나나 무스쿠리의 ‘오버앤오버’ 라는 곡이다.

‘당신의 투명한 눈 속에서 저는 사랑의 빛을 발견합니다. 더 이상 헤어짐이 아닌, 사랑은 영원합니다’라는 아름다운 가사를 생각하며 스윙하듯 춤추는 리듬을 타노라면 어느새 우리 집 거실 안에 일렁이는 바다가 들어와 있다.

행복해지는 노랫말을 음미하면서 모닝커피를 준비한다. 어제 갈아 놓은 원두가루를 필터에 넣는 순간 커피의 진한 향이 기분 좋게 퍼진다. 티폿에 끓인 물을 잠깐 식혀서 커피 드리퍼에 붓는다. 물을 머금은 원두가루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낙숫물처럼 커피 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반복되는 아침 일상이지만 한 번도 지루하다고 여긴 적이 없다. 이런 아침의 소소한 일상은 확실하게 행복하다. 이른바 ‘소확행’이다.

작년부터 소확행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이 말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각광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랑겔한스섬의 오후’ 라는 수필집에서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표현을 하면서 소확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전했다. 또한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거나, 새로 산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 행복하다는 진솔한 고백들을 한다. 어찌 보면 참으로 유치한 일 같지만 작가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그 순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렇게 작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매순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작은 것에도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여유나 의지, 그리고 삶의 철학 같은 것이 있으면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통속적인 삶에 묻혀 지내다가 그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놓치기 일쑤다. 특히 소비적이고 분주한 도시의 삶은 행복의 걸림돌이 되기고 한다. 바쁜 일상과 물질의 결핍이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물질에 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에 관한 보고서를 낸 미국의 경제사학자 이스털린은 GDP와 복지간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그는 GDP가 급속 증가한 부유국 국민이 반드시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알아냈다. 즉,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석한 것으로 이스털린의 역설로 알려져 있다.

요즘 유튜브에 한창 뜨고 있는 콘텐츠가 있다. 서울 신촌 거리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일명 신촌 명물고양이다. 귀여운 고양이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데 재치 있는 몸짓과 춤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익살스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새 나도 명물고양이 팬이 되고 만다.

그냥 스쳐가도 될 순간이지만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 행복이 묻어난다. 소소한 재미들이 행복한 거리로 만들고 있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물질을 행복의 척도로 두지 않아야 하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탐욕과 욕구의 자리를 비워야 비로소 그 자리에 소소한 행복이 깃들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