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원
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

말과 관련된 속담 중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로 상대에게 용기를 주거나 기를 꺾을 수 있고, 위로를 하거나 좌절케 할 수도 있다. 성경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 사랑은 불의를 보며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 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지만 그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누구도 이를 알 길이 없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면 좋을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본 지면에서 두 가지 마법의 언어를 제안한다. 마법이라 명명한 이유는, 이 언어로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회복할 뿐 아니라 자녀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마법의 언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다. 아이가(신체·정신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라는 전제 하에) 문제에 부딪힐 때 부모가 솔로몬이 되어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것 대신, 아이가 직접 해결 방법을 시험해 보도록 기회를 주는 질문이다.

예컨대, “탑을 무너지지 않도록 쌓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부터 “바지를 입을 때 왼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등 삶 속에서 사소한 일까지 아이가 직접 해결하도록 기회를 줄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질문이 마법의 언어인 이유는, 아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으로부터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의사결정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 평균 자녀 수가 한 명 내지는 두 명이다 보니 자녀가 참으로 귀하다. 필자가 유치원에 근무할 때 한 아이가 내 손에 슬그머니 종이를 쥐어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기도 했기 때문에 손에 있는 종이가 사랑의 편지일거라 생각했다. 손을 펴보니 그건 사랑의 편지가 아니라 쓰레기였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쓰레기를 손수 버려주기 때문에 아이는 1m 앞 휴지통에 쓰레기를 직접 버리는 대신 선생님 손에 쥐어준 것으로 보였다. 아이가 할 일을 부모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주면 아이는 성장할 수가 없다.

두 번째 마법의 언어는, “그럴 수도 있겠다”이다. 아이가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라 당신을 노려본다고 치자. 혹은 아이가 화가 나서 발을 쾅쾅 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문화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어른 앞에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야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우리 어른도 화가 나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행동을 두둔할 뜻은 없다. 다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억누르도록 지도하는 대신 “지금 네가 화가 났구나” 혹은 “서운한가 보다”고 공감해 보자. 아이 입장을 공감해 준다면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다룰 여유를 찾게 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은, 아이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 직장 동료 관계 등에서 서로가 통(通)하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내 마음이 네 마음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뛰어넘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우리 인간의 욕구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계명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좋은 유아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필자는 수업 중에 학생들이 위 두 언어를 되뇌도록 지도하고 있다. 언어는 습관이어서 위 두 언어가 우리 몸에 베여있지 않으면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도 함께 되뇌어 보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