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 살 때는 그래도 시내 가까워 좋았다. 종로라 해도 지하철로 이십 분이나 걸릴까.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게 시간이 좀 걸리지만 교통이 그만큼 편한 데도 없다.

은평 하고도 독바위역이라.

북한산 자락이라 공기는 좋다지만 어디 한 번 가려면 시간을 꽤 들여야 하게 됐다.

지하철 6호선이 있기는 있는데, 은평 쪽 끝이 고리 모양으로 생겨 응암역에서 역촌, 불광, 독바위, 연신내, 구산 거쳐 다시 응암역으로 나오게 된다. 이 사이에 있는 역들은 일방통행인데 특히 내가 오르내리는 독바위역은 지하철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 ‘1번 출구’가 처음이자 마지막 출구인 것이다.

전철 노선 끝에 매달린 작은 고리 한 가운데 독바위역이 있다 보니 한 번 집에서 나오는 것도 일이요 들어가는 것도 일이다. 자칫 밤 열두 시를 넘기면 막차가 응암이나 그 앞의 새절까지만 운행하기 일쑤여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야 하는 고역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 보니 독바위역까지 운행하는 심야 막차가 있다. 지하철 시각표가 달마다 달라지는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어플에 없던 운행 전철이다.

어디서 지체하든 지하철역까지 화급하게 달려가 막차를 잡아타는 기쁨은 나쁘지 않다. 더구나 이 6호선은 합정이나 마포를 지나면 막차인데도 승객이 뜸해진다.

텅 빈 객차 안에 어떤 때는 혼자 호젓한 기분으로 앉아 가는 날도 있다.

그러면 더욱 이 일 저 일 생각하는 게 많다.

반대 방향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 지금 뭐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작년에 세상 떠난 후배 웃는 얼굴이 요즘에는 자꾸만 생각난다.

백혈병 걸려 항암해서 치유됐다 재발하는 바람에 몇 달 못 버티고 떠났는데, 그때 연세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있는 것을 몇 번 찾아가 보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

요즘에는 혼자 사는 사람처럼 옛 일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콱 막혀오는 통증 같은 슬픔을 느낄 때가 많다.

독바위역까지만 운행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전철이 이윽고 마지막 정거장에 서면 내리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하철 6호선은 깊디깊다. 한밤의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몇 층 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절전으로 계단을 생으로 걸어 올라야 한다.

힘들지는 않다. 다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시간이 길다는 것뿐.

이윽고 하나밖에 없는 출구로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이건만, 외로움이 이렇듯 사무칠 수 있나.

‘독바위’의 ‘독’ 자가 홀로 독 자 인 것 같다.

깊고 깊은 어두운 밤이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