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하 림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입니다 대쪽 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여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10여 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은 빈방까지 치고들어온 달빛이 속속들이 누추한 세간들을 비추고 누추한 생애를 죄다 비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흐르는 달빛을 보며 달의 눈빛이 자신을 깊이 파고듦을 느끼고 있다.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나이 들어 저무는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자문하는 겸허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