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호 택

원불교 자선원에서

토마토 사갖고 나오는데

모르는 사람이 인사한다

(…)

마당 쓸던 빗자루 멈추고

합장하고

머리 조아리며 웃음짓는다

(…)

하지만 형제여 나는

발등에 불덩이가 못내 뜨거워서

신도가 아니란다 계율을 잘 몰라서

나팔꽃 벙글어 찬란한

유월의 아침이 부끄러워서

얼른 맞절하고

너희네 마당을 빠져나온다

시인은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자선원이라는 노숙인 재활시설에 들러 무공해 야채를 살 요량으로 토마토를 사서 나오면서 맞닥뜨린 수도자(원생)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화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웅크리고 살던 그들 옆을 스쳐지나면서 그래도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순수하고 예민한 시인의 자의식 한 자락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