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4·3 보궐선거 결과를 해석한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논평들이 우스꽝스럽다.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정의당은 “4·3 선거 승리는 선한 나비 날갯짓이 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껏 으스댔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 의석을 진땀 승부 끝에 가까스로 물려받은 선거결과에 무슨 감상이 그렇게 요란한지 모를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선거결과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어달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절절한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선거현장에서 살다시피하고 온 당력을 집중해서 치른 선거였다. 결과적으로 근근이 예전 구도를 지켜낸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과하게 붙일 일은 아닐 것 같다.

어쨌거나 딱하게 된 쪽은 바른미래당이다. 통영·고성지역에 머문 황교안 한국당 대표처럼 창원·성산지역에 상주하며 10% 득표를 장담해온 손학규 대표의 입지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 단일화로 득표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상황에서도 올인하다가 이언주 의원에게 ‘찌질하다’는 소리까지 들은 망신을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판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진보개혁 단일 후보인 여영국 후보의 승리는 우리 당의 승리나 마찬가지”라는 논평은 후안무치하다. 국회의원 선거구 2곳과 기초의원 선거구 3곳에서 실시된 이번 보선에서 민주당은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홍영표 원내대표의 “19대 총선의 2배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는 발언은 차라리 측은하다. 보궐선거 직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맞닥트린 ‘북경노적사(北經勞積司 북한·경제·노동·적폐·사법)’ 문제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상기하면서 “‘문재인 저수지’에 쥐구멍이 뚫렸다”고 경고했다.

국회의 장관 청문회는 최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이슈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인사 참사 논란은 거듭돼왔지만, 이번 장관내정자 7명 중 두 명이 낙마한 현실은 자못 심각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와대 전 대변인 김의겸의 개발예정지 부동산 투기 의혹은 정권 최대의 스캔들로 여론을 후벼 파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았다. 노 실장은 이날 4·3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겸손하게 다가가야겠구나’라고 자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서 “창원성산 지역구는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41%를 얻었는데 이번에 45%를 얻어서 4%포인트 지지도가 높아졌다”고 말해 초라한 견강부회의 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이 12명’이라는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에 “청문 보고서 없이 청와대로 올라온 사람 중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국회가 국회의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역공을 폈다. 그의 표정에 ‘자성’ 따위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남 탓’ 근성은 고질병 수준이다. 걸핏하면 문제의 원인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린다. 노영민 대통령실장의 “전 정부도 다 그랬다”는 반박은 불행하게도 이 정권에서 단두대처럼 써먹고 있는 ‘적폐 몰이’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다. 내가 하면 ‘촛불정신’이자‘관행’이요, 남이 하면 ‘적폐’라는 논리야말로 역사를 망치는 천박한 인식의 발로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례는 빙산 일각일 것이라는 끔찍한 풍문이 나돈다. 어림잡아 100여 명의 전 정부 인사와 공무원들에게 ‘적폐’ 딱지를 붙여 사법처리 중인 정부 여당이 자기편 김경수 한 사람 구속에 흥분하여 담당 재판관에게 무차별 신상털이 인신공격 몰매질을 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혼돈의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