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밀려드는 공기. 고국의 공기는 정말 정겹더군요. 코를 킁킁거리며 익숙한 바람 냄새 맡아보니 정말 이 나라로 돌아와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요? 같이 모여 살 때는 서로 으르릉거리는 게 어지간히 질리기도 했는데, 몇 일 안 봤다고 그립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커피. 베트남 커피 맛있다고 원두커피도 몇 봉투 사고, 베트남식 믹스커피도 사마시기는 했지만, 역시 한국식 아메리카노가 아쉬운 여행이었지요. 비행기에서 내려 귀국장으로 나오자마자 프랜차이즈 아무데나 찾아든 한국식 원두 커피의 쓰디쓴 맛!

사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기는 있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려 모노레일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을 때였어요. 제 기내용 캐리어가 중심이 잘 안 잡혀서 넘어지곤 해요. 그래도 세워놓고 잠깐 볼 일을 보는데, 그게 그만 앞으로 넘어지며 캐리어 손잡이가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 분의 다리를 친 거예요.

ㅡ에이, 씨.

화장도 곱게 한 오피스 직원 차림 여성 분이 고개를 휙 돌리며 ‘뱉은’ 말씀이셨어요. 그 분은 다른 일행도 한 사람 같이 있었는데요.

ㅡ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인천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 공항철도 탈 때였어요. 플랫폼에 섰으니, 어김없이 전철이 들어오고 차문이 열려요. 다들 짐이 많잖아요? 저도 캐리어가 있고 앞 사람도 큰 트렁크를 밀고 뒤에는 아주 젊은 커플도 하나씩 트렁크를 끌고 있었어요. 차문이 곧 닫힐 테니, 마음들은 조금씩 급했을 테지요. 그래도 다들 들어오기는 했어요. 제2터미널에서 제1터미널로 온 전철에는 빈 자리가 몇 개밖에 없었어요. 저한테도 다행히 차례가 오겠더군요.

ㅡ씨@!

엥. 이건 무슨 소린가요. 맙소사. 그건 제 뒤따라 들어온 젊은 커플 중 ‘남자애’ 입에서 나온 소리였어요. 앞에서 거리적거린다는 거였어요. 혼잣말 하듯 했지만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아서 그건 마치 저보고 들으라는 소리 같았어요. 제 행동이 좀 굼떴던 것 같아요. 보통보다도 굼떴던 모양이지요.

한 삼 주 지났나 봅니다.

밤에 집에 돌아가느라 저는 또 전철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탔어요.

제가 사는 곳은 역이 통행인이 적어서인지 에스컬레이터 폭이 아주 좁은 편이예요. 한 사람이 서면 그만인 거지요. 에스컬레이터 마지막 계단까지 저를 데려갔고, 이제 저는 지상에 발을 겨우 내딛었죠.

ㅡ에이, 씨.

바로 뒤에 섰던 여학생의 목소리였어요. 여학생은 저를 약간 밀치듯 스치면서 아주 바쁜 걸음으로 멀어져 가 버렸어요.

아. 세 번째 씨 자 소리를 듣고 나자, 저는 드디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어요. 굼뜨면 안되는 것을. 플랫폼이나 전철이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데서는 절대 해찰 부려서도 안되고요.

혹시 서울 오시는 분 있으시면 명심하셔야 해요. 요즘 씨, 자 입에 달고 사는 젊은 분들 아주 많거든요. 그리고 다들 제갈길 가느라 엄청 바빠요. 공연히 굼뜨게 다니시다가는 큰 코 다치실 수도 있어요.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