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벚꽃이 흐드러진 마을길을 지나가다 골목에서 담배를 맛나게 피우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교복을 입었으니 분명 학생일 터,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로 대놓고 흡연을 하는 경우는 보기 흔한 장면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나 사복차림으로 일반인 행세를 하며 거리담배를 피우거나, 교복을 입은 경우는 여러 명이 떼거리로 모여서 무리의 힘을 믿고 골목담배를 감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교사였던 사명감이 아니라도 어른으로서 당연히 뭐라고 간섭을 해야 마땅한 장면이었으나 헛웃음이 나오며 멀거니 바라보다 그냥 지나쳤다. ‘교직에서 퇴직한 탓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저 싱싱한 폐를, 간을, 두뇌를 함부로 손상시키는 흡연행위가 안타깝고, 공중도덕에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누가 말린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야 고쳐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악도 스스로 충분히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고치는, 그래서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는 아까운 것이라 했던가?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담배를 경험했고, 대학에 가서는 급속도로 애연가가 되었으며, 암울하기만 하던 청춘시절 내내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담배였다. 언제나 곁에 있었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는 벗으로 믿었던 담배는 연인보다 더 영원할 것만 같던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고, 굳이 해로움을 인지해서라기보다는 몸이 담배를 받아주지 않아서 저절로 금연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런 것도 섭리라 해야 할지.

초임시절 교무실의 남교사 책상 위에는 대부분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공공장소 곳곳에도 그랬으며 일반 자동차는 물론 대중이 함께 타는 버스의 의자 뒤편에도 재떨이가 장착되어 있었다. 애연가들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대곤 하였으니, 요즘은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며 상상조차 힘든 풍속도이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매우 생경하였으며 어쩐지 미개해보이기까지 하였다. 문명의 탑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도 길어지는 법, 환경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구환경을 말하려다 담배 얘기가 너무 장황해지고 말았는데, 얼마 전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하고 암담했던 기억이 오버랩 된 까닭이다. 황사니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의 질이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눈앞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은 지난해 겪은 지진의 충격 못지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죽도시장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주차장이 복잡하여 주차타워 6층,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목격한 풍경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포항시의 모든 건물, 차량, 사람들과 길거리 풍경이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으니 사방을 둘러보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맑고 푸른 형산강 강변에서 유년을 보낸 필자는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하다 강물을 먹기 일쑤였지만 아무 탈이 없었고, 파란 하늘과 초록의 산천을 바라보며 금수강산임을 자부하였는데, 불과 한 사람의 생애 도중에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환경을 보며 후손들의 미래가 암담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지에 어김없이 봄은 왔고 산천에는 온갖 꽃들이 지천이다. 오늘 아침 영일만에 부는 바람은 봄바람치고는 몹시 차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봄꽃들은 꽃샘추위가 있을 줄 알면서도 꽃을 피운다. 봄에 피는 꽃은 꽃잎이 작고 향기도 강하지 않은 편이라 꽃이 한창인 계절에 피면 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추위가 닥칠 것을 알면서 잎을 내기도 전에 꽃부터 피운다고 한다. 이런 것이 대자연의 섭리라면, 포항지진이 인재이듯 대기의 위기는 인재다. 대재앙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