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범 신

내가 빈 논의

저 쓸쓸한 벼 그루터기가 되고 싶은 건

다른 것이 아냐

암컷도 아냐

봄날 경운기 삽날에 아낌없이

뿌리째 뒤집혀지고 싶기 때문이야

그뿐이야

작가가 쓴 짧은 시에서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허무와 낙관이라는 두 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 외로움과 폭설 속에서 팽개쳐져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벼 그루터기의 절망과 봄을 맞아 다시 촉촉한 비를 맞고 따스한 봄볕에 새 순을 틔우게 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엄동을 건넌 삼라만상에 이러한 희망이 차오르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