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해자 유적 발굴지구서
목재배·나무방패 등 발굴
‘의례용’ 제작 추정… 학계 주목

월성 해자에서 나온 나무 방패.

옛 신라 궁궐터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유적발굴지구에서 1천600년 전 무렵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 배 모형 1척과 나무 방패 2점이 발굴됐다.

연대측정 결과 이 목제 유물들의 제작시기는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350~367년 또는 380~424년)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미니어처 배 중에는 가장 오래됐고, 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대 방패가 형태가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온전히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월성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2일 발굴 현장에서 간담회를 열어 월성 서쪽 A지구와 이에 동쪽으로 인접한 B지구 북쪽 1호 수혈해자 최하층에서 찾은‘미니어처’목제 배 1척과 목제 방패 2점을 공개했다.

연구소 측은 해자(垓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물도랑 또는 못)에서 의례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약 40㎝ 가량의 미니어처 배 1척과 4~5세기에 제작된 실물 방패(防牌) 2점 등의 유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해자에서는 또 소규모 인력을 지휘하는 지방관인 당주(幢主)와 곡물이 언급된 문서 목간 1점도 나왔다.

이번에 발굴된 배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된 유물로 판명됐다. 배는 통나무배-준구조선-구조선 등으로 발달하는데 이번에 확인된 것은 통나무 배보다 발전된 형태로 실제 배와 같이 선수((船首)와 선미(船尾)가 분명하게 표현된 이른바 준구조선(準構造船)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몸체 안팎에서 불에 그슬리거나 탄 흔적이 확인돼 불과 관련된 의례용으로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약 5년생의 잣나무류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형태를 정교하게 모방하고 공을 들여 만들었다는 점에서 왕실이나 최고위 계층을 위한 유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함께 나온 나무 방패는 신라 병사들이 썼던 유일한 실물로 추정된다. 온전한 모양새로 출토된 사례로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의미가 크다, 2점 모두 해자의 가장 낮은 바닥면에서 출토됐는데, 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는 형태다.

수종은 몸체는 잣나무류(소나무속 연송류), 손잡이는 느티나무롤 만들었으며 크기는 각각 가로·세로가 14.4×73cm와 26.3×95.9cm이며, 두께는 1cm와 1.2cm이다. 표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기하학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색·검은색으로 채색했다. 또

일정한 간격의 구멍들이 보이는데, 실과 같은 재료로 단단히 엮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연구소 측은 실제 방어용 무기로 쓰였거나 수변 의례를 벌이면서 의장용(儀裝用)으로 세워 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소는 사람이 먹거나 의례용으로 사용한 흔적이 드러나는 신라시대 식물 씨앗과 열매 63종, 생후 6개월 안팎의 어린 멧돼지뼈 26개체, 곰 뼈 15점, 신라인이 직접 남긴 생생한 기록인 목간(木簡) 등 수 백여 점의 유물도 찾았다.

이중 한 목간은 삼면에 글자를 적었는데, 국보 ‘단양 신라 적성비’에 등장하는 지방관 명칭인 당주(幢主)를 명기한 두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4~5세기 무렵의 의례용 배 모양 축소 모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4~5세기 무렵의 의례용 배 모양 축소 모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외에도 2∼3세기 분묘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수정 원석이 나왔고,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성된 1호 해자북동쪽 3호 석축해자에서는 실제 생활에서 사용된 흔적이 있는 철부(鐵斧·쇠도끼) 36점이 발견됐다.

방패와 목제 배 등 이번에 공개된 유물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월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들은 오는 5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지난 2월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을 바탕으로 월성 발굴조사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신라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은 2015년 이래 국내 최대규모의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당대의 사회 생활상을 일러주는 희귀유물들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이번에 B지구 북쪽 1호 해자에서 찾아낸 1천600년전 병사들이 썼던 방패 실물과 의례에 썼던 나무배 모형 등 외에도 해자 주위에 분포한 식물 자료 검토를 위해 화분(꽃가루) 등을 분석한 결과 해자 연못 위에 서식했던 가시연꽃, 물속에 살았던 수생식물, 해자 외곽 소하천변의 느티나무 군락 등의 흔적도 파악해 월성 해자는 성의 방어와 외부 조경(造景)의 구실을 하면서 다양한 의례도 이뤄진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황성호·윤희정기자

    황성호·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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