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온천지가 겨울을 승화시킨 꽃들의 이야기이다. 모진 추위를 이겨낸 꽃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무용담(武勇談) 정도는 있을 법도 하지만 꽃들은 절대 소란하지 않다. 야단법석을 떠는 건 역시 사람들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노해 시인은 꽃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그런데 꽃의 모습에만 눈이 먼 사람들에겐 꽃의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말(‘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을 글로 전한다.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세상을 뒤덮은 꽃들이지만 시인의 말처럼 그들에겐 순서가 있다. 아무리 인간들이 자연 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도 집착을 모르는 꽃들은 차례를 지켜 피고 진다. 그러기에 개성을 잃어버린 인간들과는 달리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꽃들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꽃들의 모습에는 부자연스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집, 독선 등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은 아무리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도 그 자체가 가식(假飾)이기에 어색하기 그지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어색한지도 모르고 자연 앞에서 자연스러운 척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자연스러움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안타까운 것은 물귀신 같은 인간들은 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착각을 강요한다. 그 모습은 병적이다. 병명은 집착증(執着症)!

최근 정치인들과 그 하수인들이 목숨을 걸고 집착하는 대상은 과거이다. 정말 지겹지도 않은지 정권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과거 이야기뿐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들은 전 정부의 과거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과거에서 온 사자(死者)들 같다. 정말 이러고서야 이 나라에 현재와 미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도 없고, 미래는 더 없는 이 나라는 정말 암흑기(暗黑期)이다. 과거를 현재 자신들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1900년대 초보다 더 혹독한 암흑기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는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이를 증명하는 법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 법은 이 나라 교육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법이다. 법이 만들어져야 할 정도로 이 나라 교육은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법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인디언들은 4월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학교 현장은 어떨까? 학교 현장의 4월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의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달이다. 이 나라 학생들에게 있어 4월은 ‘시험을 보는 달’이다. 교사들의 칼 퇴근 시간에 맞춰 교문이 굳게 닫히는 학교와는 달리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교육 현장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것이 이 나라 4월의 교육 모습이다.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학생들은 학교 교사가 출제하는 시험을 풀기 위해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학교 수업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한다.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을 자신의 수업에 집중시킬 마음이 많이 없다. 왜냐하면 괜히 힘을 뺄 필요가 없으니까! 수업 시간이라는 자신들의 일당만 채우면 되니까!

양육강식 시험에 주눅 든 학생들로 가득한 4월 학교 모습이 어떨지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